김영삼 총재의「변신」|박보균<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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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상도동 정치의 청산을 부르짖고 나왔다. 이른바 야당 가의 오랜 관행인「안방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유신이후 이 땅에 전개된 암울한 정치상황에서「상도동」은 김대중씨의「동교동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정치적 상징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두 김씨가 치열한 내부경쟁을 벌일 때는 계보정치의 대명사요, 두 김씨가 가택연금을 당하면 민주주의와 저항의 참호였다. 또 절대권력이 두 김씨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게 했을 때 언론들은「상도동」「동교동」으로 은 유해 그들의 동정을 보도했다.
김영삼씨가 정치적 탄압과 장기간의 가택연금에 항의, 단식투쟁을 했을 때(83년) 어느 신문은「상도동 인사의 식사문제」란 표현을 써 가며 강권정치를 풍자했었다.
이처럼 「상도동」과「안방정치」는 오랜 기간 변방만 돌아온 야당 가의 한과 파벌적 쟁투가 복합된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용어다.
그런 김영삼씨가 왜 갑자기 자신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정치적 함축을 깨겠다고 하는 것일까.
안방정치가 시대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겼다면 김 총재가 이를 청산하려는 것 역시 시대에 순응하려는 것임은 불문가지다.
김대중씨가「온건·합리」의 이미지부각을 위해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 김영삼씨 역시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소속의원 전원을 데리고 하룻밤을 묵으며 정책세미나를 열었으며 농축산물 수입문제·증권시장육성방안에 관한 세미나도 가졌다.
대통령선거, 여소 야대의 정치구도를 거치면서 김영삼 총재는 투쟁일변도의 전근대성·파당성과 『남의 두뇌는 빌 수 있지만 건강은 빌 수 없다』는 식의 행 태로는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의원들에게 공부하라고 독려하고 스스로 안방정치를 벗어나려는 김 총재의 몸부림이 우리 정치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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