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건축 규제만으론 한계 … 주택 공급 대책도 병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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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아파트 재건축사업의 첫 단계인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에서 구조 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높이고, 주거환경 비중은 40%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안전진단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현지조사 단계에 공공기관이 참여하도록 했고, 사실상 ‘재건축 적합’과 다름없었던 ‘조건부 재건축’도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도록 했다. 자치단체가 갖고 있던 안전성 판단 권한을 사실상 중앙정부로 이관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구조적으로 큰 안전 문제가 없으면 단순히 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재건축에 들어가기 어렵게 됐다.

이번 방안은 서울 강남 재건축이 집값 불안의 진앙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강남 재건축 시장의 비정상적 과열은 투기 세력의 온상이 되면서 가격 거품을 키워 왔다. 이런 점에서 재건축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된다. 연한만 채우면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감이 해소되면서 초기 단계 재건축의 가격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재건축 규제가 서울 시내, 특히 강남 지역의 새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정부의 시그널(신호)을 시장이 거꾸로 받아들여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실 재건축 규제에 따른 공급 부족 문제가 실제로 나타나려면 최소 수년이 걸린다. 그런데도 공급 부족 우려가 집값 상승의 재료가 되는 이유는 기대감과 불안감 때문이다. 이런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고급 주거 수요에 걸맞은 공급책을 확실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비강남 지역에 강남 지역 못지않은 고급 주거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노무현 시대 부동산값 폭등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수요 억제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이 병행되는 방법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