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준가스' 만드는 화학박사 3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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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대덕연구개발(R&D)특구 안에 있는 벤처기업 리가스는 '삼부자(三父子) 화학박사'가 운영하는 회사다. 사장은 표준과학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이광우(69.사진(中)) 박사다. 이 사장의 큰아들 상호(38.(右))씨는 경영.마케팅 담당 이사, 둘째아들 상윤(34.(左))씨는 연구개발실장. 두 아들도 모두 화학관련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삼부자가 처음 화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50년 전. 이 사장이 서울대 화학교육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화학이 적성에 맞았던 그는 화학과로 옮겨 대학원을 졸업하고 호주 퀸즈랜드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표준과학연구원에 창립 멤버로 들어가 30여년간 근무했다. 표준물질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연구를 주도해오던 그는 1998년 정년퇴임한 뒤 회사를 창업했다.

큰아들도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 대학 진학 때 주저 없이 화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서강대에서 석사학위를 딴 뒤 아버지의 모교인 퀸즈랜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창업 때부터 회사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둘째아들 이상윤 실장 역시 충남대 고분자공학과와 서강대 화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화학연구소에서 근무하다 2004년 리가스에 합류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도 유별나다. 기체의 성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표준가스'라는 제품이다. 표준가스는 대기오염 물질 측정과 석유화학공장의 공정 확인, 연구소의 연구용 등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요즘 유행하는 라식 수술에 필요한 엑시머레이저를 발생시키는 데도 표준가스가 사용된다. 표준가스의 역할은 기준값을 잡아주는 것이다. 눈금이 없는 자나 저울이 소용이 없듯이 표준가스가 없으면 가스의 정확한 성분과 함량을 알 수 없다. 예컨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측정하려면 먼저 계측기에 표준가스를 넣어 기준값을 정해준 뒤 시료를 측정해야 한다.

제품의 사용처가 한정돼 있다보니 회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15명의 임직원이 10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품이 이 회사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들이어서 기술력은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사람 모두 화학이 전공분야인 데다 제품생산이나 실험, 마케팅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휴일이라도 언제든 모여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엔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아 엑시머레이저용 가스를 국내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지금은 환경부와 산업자원부의 의뢰로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관련한 표준가스를 개발 중이다. 고정도 증기발생기와 가스에 내성을 갖는 분리막 등 관련 소재 및 장비의 개발에도 착수했다. 큰아들 상호씨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은 아니지만 표준이 모든 산업의 기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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