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평가와 전망] 한·미·일·중·러 학자 좌담

중앙일보

입력

고려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원(EAI)과 북미고르바초프재단(GFNA)이 공동 주최한 동북아시아 평화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의 학자들이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을 평가하고 전망했다. 이들은 6자회담의 성패는 미국과 북한이 얼마나 타협에 적극적일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국내정치적 상황 등으로 인해 당분간은 적극적으로 나설 형편이 아니고, 북한은 갖고 있는 선택지의 한계로 미국의 생산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돌발사태가 없는 한 6자회담은 당분간 팽팽한 긴장 속에 소강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편집자>

金=베이징 6자회담은 성공했나 실패했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뭔가.

페이= '성공적인 실패'였다. 4월 이후에 닫혀 있던 외교 채널이 다시 열렸다는 의미에선 성공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구체적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에선 실패다.

야마모토=북한은 이번 회담이 실패했다지만 한두달 더 지켜본 후에나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일본에선 성공으로 본다.

오키모토=6개국이 마주 앉았고, 중국이 중재에 적극 나섰다는 것 자체가 전례없는 업적이다. 회담의 최종 목표는 북한의 핵 개발 포기다. 미국은 대통령과 의회 선거를 앞뒀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문제도 아직 진행 중이다. 더구나 외교정책에서 정당 간 견해차도 대단히 크고 부시 행정부 안에서조차 강온파가 대립한다. 미국이 이른 시일 내에 견해를 통일하기는 쉽지 않다.

루킨=회담의 시작은 매우 평범했다. 협상에서 당사자들은 언제나 초기에 가장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게 마련이다. 최종 합의는 미국과 북한의 양보로 이뤄질 것이며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양국에 압력을 넣을 것이다.

金=한국 보수층은 중국을 회담에 불러들였다는 점을 성공이라고 본다. 진보층은 미 정부가 외교정책을 완화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한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키모토=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북한의 정권 교체를 바라는 입장과 그것 자체가 목적이어선 안된다는 입장이 있다. 어차피 북한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며, 이런 불량 국가와 회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한다면 미국은 강경책으로 돌아설 것이다.

페이=그것이 바로 북한의 딜레마다. 아무 것도 안하면 워싱턴의 주목을 끌 수가 없고, 뭐라도 하면 너무 많은 관심을 끌게 된다.

金=일본 사회 내에도 이런 균열이 있나?

야마모토=일본 내에서는 별 이견이 없다. 다만 자민당 내 총재선거를 앞두고 일본인 납치 문제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북핵과 관련해선 미국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따라서 별 이견없이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고 있다.

金=베이징의 신.구 지도부 간에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는가?

페이=신.구 지도부 모두 북한의 핵보유를 막겠다는 데 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새 지도부는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더 급박하다고 생각한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많은 약속을 했지만 실제로 한 건 별로 없다. 그러나 후진타오(胡錦濤)현 주석은 실제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북한이 더 이상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회담에 계속 나오도록 무엇을 줄 것인지, 어떻게 완고한 미국의 입장을 바꿀 것인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루킨=북한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므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에 일정한 양보를 요구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오키모토=미국에선 중국이 북한의 탈북자들을 돌려 보내지 않는다면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중국이 그런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나.

페이=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매우 우려한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려면 에너지 공급이나 식량 교역의 통제 등 다른 방법을 먼저 구사할 것이다. 탈북 허용은 한다 해도 가장 나중에 선택할 것이다. 물론 그런 정책을 취한다면 먼저 남한과 협상할 것이다.

金=미 강경파들은 북한을 궁지로 몰면 큰 위기가 닥칠 것이고, 이때 중국은 미국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이=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중국이 득볼 게 없을 것이니 북한이 핵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궁지에 몰아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에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방식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金=한국은 지리적인 이유와 북한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평화적인 협상을 바라고 있다. 진보파는 한국 정부가 북.미 양국의 중재자로 나서길 바란다. 그러나 보수파들도 미 강경파들과 입장을 같이하기는 구조적으로 힘들다. 따라서 한국은 미 강경파들의 어조를 완화하는 동시에 북한을 회담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진보층의 입장이며 현 정부의 태도이기도 하다.

오키모토=북핵을 보는 미국과 한국의 외교적 우선순위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미국은 핵 비확산과 한반도의 비핵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인상이다.

金=한국에선 가장 보수적인 사람조차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 제재 등 보다 강한 압력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도,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구조 때문에 전쟁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선 북한의 핵 문제를 한반도의 안보라는 좁은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미 간에는 거대한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오키모토=그렇다면 미국만 북한의 정권 교체를 원하는 것인가.

페이=중국은 정책의 점진적 변화라도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정권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으로 본다. 따라서 정권 붕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떻게 붕괴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

金=북한의 정권 붕괴로 인한 갑작스런 통일을 받아들일 정치.사회.경제적 준비가 돼 있는가. 한국은 아직 그런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인들은 독일 통일 당시의 서독인들처럼 주어진 문제로 간주해 해결해 나가려 할 것이다.

루킨=러시아는 북한 정권의 교체가 장기적으로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좋은 파트너가 생기고, 지정학적으로도 다른 이웃과 연결이 쉬워지는 등의 기대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 조그마한 군사적 충돌이라도 발생하거나,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대량의 탈북자가 발생하는 등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북한에서 단계적인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金=6자 회담이 깨진다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인가.

페이=6자회담을 깰 수 있는 것은 북한과 미국밖에 없다. 만약 북한의 핵연료봉 재처리 등이 적발되거나, 미 강경파들이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언론 플레이를 한다면 회담이 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마모토=미국과 북한이 회담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전망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회담은 계속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회담은 깨질 것이다.

오키모토=미국은 북한 핵을 빨리 해결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선 북한이 핵폭탄을 여섯개 보유한다는 것과 두개 보유한다는 것은 매우 다른 문제다. 테러리스트들에 여유 분량을 팔 수 있게 되는 것은 더더욱 다른 문제다.

페이=중국은 북한이 돌출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미국처럼 사태를 급박하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되는 자극과 반작용으로 사태가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우려하고 있다.

오키모토=물론 미국 내의 이견이나, 국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사태를 평화적으로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金=일본.미국.한국에서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들 선거가 회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오키모토=경제와 이라크 문제가 이번 선거에서 북핵 문제를 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경제 문제와 이라크 문제로 부시를 공격하면, 부시는 북핵 문제까지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야마모토=북핵 문제의 장기화는 자위대의 군비확장이나 헌법 개정 등 우경화의 구실이 될 가능성이 걱정된다.

金=한국에선 이러한 상황이 내년 봄까지 계속된다면 내부의 이데올로기 차이가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페이=중국은 6자회담을 보다 책임있고 강력하며 공익을 창출하는 중국이란 새 이미지를 만들 기회로 보고 있다. 중국이 이 지역 안보 문제에 이처럼 적극 나선 것은 처음이다. 따라서 회담이 성공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해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지역안보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야마모토= 20세기의 일본처럼 21세기엔 중국이 동아시아를 주도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루킨=러시아는 중국에서 배우고 있다. 세계적 강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우리와 직결된 지역안보 문제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키모토= 회담이 실패하거나 별 소득이 없다면 미국에선 중국 책임론이 대두될 것이다. 미국은 이 문제가 중국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정리=윤혜신 기자hyaes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