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 몰락은 주민들이 노예 끌려간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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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태평양의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이 유럽인의 노예사냥과 쥐로 인해 폐허가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칠레에서 태평양으로 3600㎞ 떨어진 이스터섬에는 '모아이'라고 불리는 높이 3~12m, 무게 20t 이상 되는 거대한 석상 1000여 기가 흩어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아직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석상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여기 살던 사람들은 언제 사라졌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스터섬의 문명 붕괴를 둘러싸고 환경 파괴설, 종족 갈등설, 그리고 우주인이 석상을 만들었다는 UFO 개입설까지 나돌았다.

미 하와이대학의 테리 헌트 교수는 권위 있는 과학잡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은 보고서에서 "문명 붕괴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섬의 유적지에서 채취한 토양을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이 섬에 사람이 처음 도착한 것은 1200년께라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그는 이 섬에 살았던 인구가 2만 명이 아니라 많아야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문명을 이룰 만한 규모의 인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이 섬의 멸망과 관련, 1722년 이 섬에 처음 상륙한 유럽인들이 주민들을 노예로 끌고 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폴리네시아인을 따라온 쥐가 섬의 몰락을 재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애초 쥐가 없던 이 섬에 13세기에 쥐가 무려 2000만 마리로 불어났음을 보여주는 근거를 제시했다. 급속히 불어난 쥐가 야자씨를 먹어치워 야자나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헌트 교수는 "원주민들이 자멸했다는 얘기는 선교사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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