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첫 일본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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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처음 일본 관객의 반응은 썰렁했다. 가끔 나오는 박수도 의례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객석은 술렁거렸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고, 마침내 조승우(사진)가 무대 인사를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풀어헤치는 마지막 팬 서비스에 "캬-악"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한국과 똑같았다.

6분간의 기립박수. 조승우가 주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첫 일본 공연의 반응은 이례적이었다. 일본 관계자들은 "남에게 방해 줄까봐 박수 소리도 작게 하고, 자기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 관객이 공연장에서 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며 놀랐다.

#"혹시 가수 아니에요?"

13일 일본 도쿄는 아침부터 간간이 눈발이 날렸다. 3월 중순인데도 쌀쌀한 칼바람이 불었다. '지킬 앤 하이드'가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장은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유포트극장. 최고급 수준은 아니지만 콘서트가 많이 열리는 대중적인 공연장이다.

공연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80%가 여성, 40~50대 중년 여성이 '주류'였다. "어떻게 알고 왔나"는 질문에 대답은 크게 두 가지. "조승우를 직접 보고 싶어서"란 '골수팬'이 절반, "한국 뮤지컬이 좋다는 소문을 들어서"란 반응도 많았다. '지킬 앤 하이드'의 국내 제작사인 오디 뮤지컬컴퍼니(대표 신춘수)측은 "조승우가 출연한 영화 '말아톤'이 일본에선 별반 재미를 보지 못했다. 아직 '한류 스타'로 보긴 힘들어 마케팅에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불 켜진 객석.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혹시 가수 아닌가요. 배우라고요? 근데 어떻게 노래를 저렇게 잘하나요?"라고 묻는 관객도 있었다. 지바현에서 2시간을 달려왔다는 후보타 모모요(59)는 "일본 배우들도 '지킬 앤 하이드'를 했다. 그런데 느낌이 너무 다르다. 박력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폭발적인 에너지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영화 '쉬리'를 수입했던 아뮤즈 엔터테인먼트의 요키치 오사토 회장은 "노래.연기.무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본능적인 꿈틀거림으로 승부하라

한국 대형 뮤지컬의 일본 공연은 지금까지 두 차례. 2002년 허준호 주연 '갬블러'가 초청 형식으로 공연됐다. 올 초 초연된 '겨울 연가'는 드라마의 후광을 활용한 경우다. 따라서 이번 '지킬 앤 하이드'는 한국 뮤지컬의 본격적인 일본 진출 신호탄인 셈이다. 일본 '월간 뮤지컬' 은세가와 마사히사 편집장은 "연기와 댄스의 기본기는 다소 떨어지지만 일본 배우에겐 없는 원초적인 움직임이 한국 배우에겐 있다. 특히 노래의 필(feel)이 강렬하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5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한국의 다섯 배. 일본 최대 극단 '시키'의 한국 직원 장혁진씨는 "시키.토후 등 대형 극단 체제인 일본 공연계는 안정적인 반면 다소 침체돼 있다. 일본 공연계도'한국적 에너지'로 무장한 작품이 돌파구를 뚫어주길 내심 바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순천향대 원종원 교수는 "일본은 창작 뮤지컬이 거의 없다. 대부분 '라이선스 공연'임에도 개방적인 문화인 때문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차별성만 있다면 한국 뮤지컬은 영화.가요.드라마에 이어 또 다른 '한류'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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