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참배' 중·일 감정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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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중국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어리석고 부도덕한 일"이라고 공격하자 일본 정부는 "품위가 없다"며 맞받아쳤다. 게다가 일 외무성이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주일 중국대사를 소환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는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0일 "리자오싱 외교부장의 발언 다음날인 8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 외무성 차관이 왕이(王毅) 주일 중국대사에게 '외무성으로 들어와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외국 대사가 주재국 외교 당국의 소환요청에 불응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극히 이례적이다.

신문에 따르면 야치 차관은 리자오싱 외교부장이 독일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어떻게 이런 어리석고 부도덕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8일 주일 중국 대사관에 전화로 외무성에 들어올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 대사관 측은 "매우 바쁘다"며 이를 거부하다 저녁 무렵에야 겨우 왕이 대사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야치 차관은 "견해차가 있더라도 적절한 표현을 사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으나 왕이 대사는 중국의 기존 입장을 설명하면서 사과를 거부했다. 물론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9일 국회에 나와 "외교수장의 자리에 있는 인물(리자오싱 외교부장)이 일국의 지도자에게 '어리석다'거나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품위가 없다"며 "독일 정부 당국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 외상은 9일 국회 답변에서 "대만은 민주주의가 성숙해 있고 경제면에서도 자유주의경제를 신봉하는 법치국가로 일본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라고 말했다. 대만을 '국가'로 호칭한 것은 물론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아소 외상은 문제가 되자 나중에 이 발언을 번복했다. 이에 중국의 친강(秦剛) 외교부 부대변인은 "중국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한 행위로 경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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