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거구제 관철은 최선의 작품"|인터뷰=고흥길 본사 정치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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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8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장 공관으로 이재형 의장을 찾아 12대 국회3년의 공과들 짚어봤다.
12대 국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의장께선 지난 138회 임시국회 개회 때부터 이번이 12대국회의 마지막이라며 유종의 미를 거듭 강조했습니다만 말씀대로 깨끗한 마감을 했다고 여겨지는 분위기는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3년 만에 의사 봉을 놓게된 의장으로서 홀가분 하달까, 남다른 소회가 있으시리라 믿습니다만.
『홀가분한 게 아니라 아주 착잡해요. 어제(7일)밤엔 본회의 때문에 새벽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고 오늘은 야당의원들이 민정당의 선거법단독처리를 항의하러 와서 장성만 부의장의 사회는 거부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정말 개운치 않은 기분입니다.』
-이번에 소선거구제의원선거법안이 민정당의 단독기습 통과로 결말지어진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선제헌법을 합의통과 시킨 12대 국회가 선거법을 구태여 그렇게 처리해야만 했었느냐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합의개헌의 능력에 비한다면 선거법도 합의통과 됐어야 당연하지. 그러나 의원자신들의 이해가 걸렸기 때문에 헌법보다 더 어려웠던 모양 이예요. 민정당이 2, 3차례 왔다갔다하다가 소선거구제로 최종 당론결정을 보게된 과정, 민주당이 소선거구제에서 하루아침에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던 과정, 또 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1∼3인제 혼합형을 주장하게된 이면을 살펴보면 밖으로 표출된 것과는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어요.
소선거구제 경험을 가진 현역의원이 여당에 4명, 야당에 8명 등 모두10여명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예요. 명분은 소선거구제이지만 출마 후 부닥칠 상황, 실리를 생각하면 온통 갈등뿐인 의원 개개인을 당에서도 어떤 일정한 틀에 집어넣기가 어려웠다고 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론이 내려졌지만 끝내 그래도 소선거구제를 관철시킨 것은 12대 국회가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따라서 그에 대한 나의 평점은 비교적 관대한 편입니다.
12대 국회는 과거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특이한 현상이 많았다고 봅니다. 다선 우대원칙이 지켜지지도 않았고 토론다운 토론 한번 제대로 못하고 끝난 느낌입니다. 의장으로서 느끼신 12대 국회의 공과를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자기 얘기할 땐 공은 적고 과는 많다고 해야지요.(웃음)
먼저 공부터 말한다면 헌법을 개정하고 스스로의 임기를 1년 줄여서 끝내도록 한 것이 제일 큰공이 아닐까요.
물러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장 큰공이 단임 정신실천에 있듯 12대국회의 공도 스스로 1년을 앞당긴「단임 정신」에 있다고 봐요. 정치와 행정이 모두「다스릴 정」자를 써 뜻은 같지만 2차대전후 정부기능의 양적 팽창, 질적 다변화를 거치면서 다스림의 유형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행정가, 즉 공무원에게는 법규를 근간으로 해서 능률적으로 처리하라는 요구가 있는 반면정치가에게는 법규에만 매달리지 말고 신념·신조와 같은 뜻에 의존하라는 요구가 생겨났다는 말 이예요.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 12대에 걸친 국회가 있었고 나는 낙향해서의 10년 은거를 빼놓곤 긴 세월 정치권에서 보내왔는데 제헌의원 등 전반부 의원들은 학식·경력은 모자랐을 망정 뜻을 지닌 지사들이 많았는데 후반부 특히 12대 국회는 행정가 타이프의 기능을 가진 의원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국회의원이 됐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주제파악이랄까, 자기 길을 가는 자세에 있어 전반기 의원들이 훨씬 나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몇 대동안 국회와 국회의원은 있었지만 정치는 없다는「정치부재」지적이 많았던 게 아닙니까. 오늘의 정치가 이·수준에까지밖에 이르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늘 해온 얘기입니다만 바람직한 정치는 유권자들의 의식의 발전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국민의식·국민경제 수준은 앞서가는데 정치는 구태의연하다는 얘기는 모순된 얘깁니다.
의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수준에 맞지 않는 의원들 뽑아 놓고 후회하거나 그 수준 낮은 의원들이 벌이는 정치 행태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되지요. 분위기에 휩쓸려 의원을 뽑아놓고 방목하는 목장주인처럼 의원들을「여의도목장」에 풀어놓으니….의원들 목과 연결되는 긴 고삐를 만들어 꼭 붙잡고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부재는 따지고 보면 유권자들의 감시부재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12대 국회처럼 파란과 곡절이 컸던 국회도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유성환 의원의 구속 동의 안 처리·예산안 단독처리 등의 파행국회를 겪으면서 의장으로서 아쉬웠던 점은 없었습니까.『3년 동안 의장 맡아오면서 가슴아픈 일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모든 것이 부덕의 소치이지. 그러나 작년 예산안 심의할 때 성원이 안 돼 안달한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영국수상을 지낸「디즈레일리」의 말 중에「우수한 국회의원, 출중한 정치인이 되려면 회의는 꼭 시간을 지켜 출석하고, 국회에서 배부하는 모든 문서는 머리 속에 간직해 두라」는 말이 있어요. 의원이 지켜야 할 매너이자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요건이라고 봅니다.
질문을 해놓고 답변을 듣지 않는다거나 남의 질문은 듣지도 않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그뿐입니까. 의원들이 언제부터 골프를 그렇게 잘 쳐서 발언 중「헤드 업」을 한번도 안 합니까. 미리 써온 질문서를 고개한번 안 들고 줄줄 읽어 가는 것을 뒤에서 앉아 듣고 있자 면 정말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행정부장관들의 답변도 마찬가지예요. 보좌관이나 실무자들이 써준 답변을 앵무새처럼 읽고 내려가니….의원들이 공부를 해야합니다. 사무처직원들을 대하기 민망할 때가 많았어요.
-현행국회법이 의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습니다만 실제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그 같은 지적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몇몇 야당의원이 국회법을 들어 의장을 성토하는 것을 들은바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회법이 잘못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국국회법이라도 한번 읽어보았다면 우리의 현행 국회법이 의장권한이 막강한 것이 아니라 제로상태라는 걸 알 거예요.
우리도 국회법을 고쳐 의장이 되면 당적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의장도 소속정당의 의원총회니, 간부회의니 하는 곳에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야당도 의장을 신뢰하고 존경하게 돼요.
-12대 국회는 여야 공히 반성할 점이 많다고 봅니다. 앞으로 바람직한 여야당상에 대해 한말 씀 해주시죠.
『여야 똑같이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당 운영의 민주화가 논의되고 있는데 특히 당내민주화는 꼭 이뤄져야 될 것입니다. 내가 민정당대표위원으로 있으면서 당원들의 당비를 책정, 경상비를 그 당비로 충당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야당도 앞으론 그런 제도를 정착화 시켜야 될 것입니다. 최소한 당 경비의 자기충당능력이야말로 정당의 민주적 운영과 직결되는 것이지요.
전국구의석을 헌금액수 순위로 결정하는 폐습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13대 국회에는 관료와 사업가의 진출이 너무 많아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정치를 출세의 길, 수지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배제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야가 오는13대 총선의 공천에 이 같은 점을 유의했으면 합니다.<기록=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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