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이다.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무엇이든 싱숭생숭하다. 마지막 시험을 치면서 답안지를 내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내는 순간 대학에서의 오랜 여행은 끝이다. 조금 더 학생의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마침표를 찍기 전 주위를 둘러봤다. 한 글자라도 더 적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서 좋은 직업을 위해 학점과 스펙에 목매던 예전의 나를 엿봤다.
시험이 끝난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집었다. 1학년 때 읽은 책이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남긴 쪽지는 9년이 지나서야 내 마음으로 전달됐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우리는 대학의 ‘알’을 깨기 위해 직업의 ‘부리’를 찾는다. 그리고 다른 새들보다 빨리 날기 위해 쉼 없이 벽을 두드리고 쪼아댄다.
며칠 전 대학 친구들끼리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공기업에 다니는 한 동기가 한숨을 쉬며 이직 고민을 얘기했다.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없는 넋두리는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 행복은 잠깐이라는 것에 꽤 많은 친구가 동의했다.
학보사에서 기자로 지내면서 새벽에 교내를 청소하시는 교직원을 돕는 기획기사를 쓴 적이 있다. 청소가 끝난 뒤 한 교직원이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분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더니 “단순히 직업을 꿈으로 여기지 말고 평생 동안 이뤄 나가고 싶은 것을 꿈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내 20대 여정에서 고민의 배낭을 쉽게 놓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 직업을 알을 깨는 ‘부리’가 아닌 향해야 할 ‘신’으로 여기는 후배도 많다. 하지만 간곡히 말리고 싶다. 알을 깨기 전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평생 동안 이뤄 가고 싶은 일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이 단련을 거쳐야 신을 향해 날 수 있는 신념이 생긴다. 그 과정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만큼 힘들지만 20대가 아니면 점점 더 어렵다. 남보다 늦어도 괜찮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는 많이 잡겠지만 벌레가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더 멀리 날기 위해서는 빠르게 알을 깨기보다 바르게 깨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