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경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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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6공화국이 들어서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우선 각종 행사와 회의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지난번 대통령 취임식 때도 단상의 의자들이 모두 같은 것이었고 배열도 나란히 하여 눈길을 모았다.
그같은 배려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세종문화회관의 3·1절 행사에서도 나타났다. 단상의 요란한 장식과 휘장을 없앤 것은 물론 의자도 일렬로 배치하고 여러 독립유공자들을 단상에 정중히 모셨다.
그뿐 아니라 지난번 청와대에서 열린 첫 각료회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각 국무위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회의하는 모습이 TV에 소개되어 인상적이었다.
한걸음 나아가 서울시는 앞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에서 『차렷, 경례』등을 강요하는 딱딱한 군대식 의식절차를 없앤다고 한다. 『차렷, 경례』는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난 20여년간 이런 권위주의적 행동양식에 희생되어 왔다. 정부의 높은 양반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먼저 가서 대기해야했고, 각급 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전폐하고 연도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정부 고위층이 주재하는 회의만 봐도 그렇다. 상하가 엄격히 구별된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필기도구를 지참, 국민학교 학생들처럼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회의란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일정한 사항에 대해 서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여 가장 좋은 시책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상사의 명령이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그것을 열심히 받아 적는 것으로 끝나는 회의는 회의가 아니다.
따라서 회의에는 자리를 어떻게 배열하느냐도 중요한 몫을 한다. 그런 점에서 원탁은 모든 사람의 의견을 자유롭게 유도하는 구실을 한다. 공평성과 친밀감마저 준다. 그래서 중요한 국제회의를 흔히 원초회의라고 부른다. 15세기영국작가 「마롤리」가 엮은 『「아더」왕의 죽음』을 보면 당시 기라성 같은 기사들의 권력다툼을 없애기 위해 대리석의 둥근 탁자에서 회의를 하게 했다. 「원탁의 기사」들은 중세봉건시대에 가장 근대적인 회의를 했다.
회의도 회의지만 시민행사에 『차렷, 경례』같은 군대식 잔재가 없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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