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 모아 약 만들던 녹십자, 50년 만에 매출 1조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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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녹십자가 2009년 완공한 전남 화순 공장. 독감백신 자족이 이곳을 통해 완성됐다. [사진 녹십자]

녹십자가 2009년 완공한 전남 화순 공장. 독감백신 자족이 이곳을 통해 완성됐다. [사진 녹십자]

‘여러분의 오줌은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68년 매출 2배 투자해 공장 건설 #간염·독감백신 등 속속 국산화 성공 #매출 10만배 늘고 45년째 흑자행진

1970년대 초·중·고 화장실이나 버스터미널 공용 화장실에는 이런 문구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이 문구를 내걸고 오줌을 수거해 간 업체가 바로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현재의 의약 전문기업 녹십자다.

가발·이쑤시개 외엔 변변한 수출품이 없던 시절, 녹십자는 수거한 오줌을 원료로 혈전용해제 ‘유로키나제’를 국내 최초로 생산해 수출길 개척에 나섰다.

녹십자 장평주 홍보담당 전무는 “60년대 국내에서는 의료인들조차 혈액제제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며 “녹십자의 50년은 도전과 개척의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68년에 연간 매출의 두 배가 넘는 거액인 2600만원을 투입해 신갈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투자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수입에 의존하던 일본뇌염 백신과 DPT 백신이 녹십자 기술로 탄생했다. 회사이름을 바꾼 71년에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6번째로 혈액제제 공장을 완공하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알부민’ ‘플라즈마네이트’를 국산화했다.

12년 연구 끝에 83년 탄생시킨 B형간염백신 ‘헤파박스-B’는 88올림픽 개최에 보이지 않는 공로자가 됐다. 간염 백신 접종을 국산화로 접종 비용이 수입제품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접종이 크게 늘면서 13%에 달하던 우리나라 B형 간염 보균율은 선진국 수준인 2~3% 수준으로 떨어졌다.

장 전무는 “한국은 B형 간염 왕국이라는 외국인들의 우려를 백신 국산화로 불식시키면서 올림픽 유치에 보이지 않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녹십자는 2009년엔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계절독감백신’을 원액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공급하며 독감백신의 자급자족 시대를 열었다. 정부가 외국 기업과 합작할 것을 권했지만 자체 자본과 기술로 ‘백신 주권’을 지켰다.

실적도 눈에 띄게 늘었다. 67년 1276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조 1979억원으로 50년만에 10만배 증가했다. 72년부터 지난해까지 45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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