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서 일하는 제빵사들, 본사에서 책임지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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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고용노동부가 국내 최대 제빵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에서 일하는 제빵사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데 대해 법리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고용부는 “적법한 해석”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학계 등에선 “무리한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와중에 고용부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에 “노조와 협의해서 대안을 내놓으라”고 종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대기업을 옥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논란 가열 #가맹사업법에 경영전반 조언 적시 #고용부 “SPC가 실질 사용자” 주장 #학계 “끼워맞추기식 무리한 해석” #대기업 도급업체에 불똥 우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고용부는 이처럼 논란이 커지자 22일 설명자료를 낸 데 이어 24일에도 자료를 냈다. 고용부의 주장은 간단하다. SPC가 제빵사의 채용·임금수준 등이 담긴 인사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품질관리사가 가맹점을 방문해 전반적인 지시·감독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제빵사와 관련, SPC와 가맹점주·협력업체 간에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어도 실질적인 사용사업자는 SPC라고 봤다. SPC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에 따라 가맹점과 반죽 같은 물품 공급 등의 계약을 맺고 있을 뿐이다. 이점을 의식했던지 고용부는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판례를 제시했다. 현대차와 계약관계가 없는 2차 협력업체의 사내하청 근로자를 현대차의 불법파견으로 본 판결이다.

그러나 학계와 경영계는 “사내하청은 현대차 안에서 근무하고, 그 과실을 현대차가 가져갔다”고 반박한다. 제빵사는 SPC 본사가 아니라 가맹점에서 일하고 가맹점의 매출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현대차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제빵사의 업무수행으로 가맹점의 매출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본사의 매출도 상승하고, 브랜드 이미지 강화로 본사가 이익을 누린다”고 주장한다. 이익 공유론이다.

언뜻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한데 이는 파견법이 아니라 가맹사업법에 정한 범주에 속한다. 가맹사업법은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본사가 가맹점을 관리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예컨대 제5조에는 ‘가맹사업자와 그 직원에 대한 교육·훈련’은 물론 ‘가맹사업자의 경영·영업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조언과 지원’을 적시하고 있다. 제6조에는 가맹점에 ‘상품 또는 용역에 대하여 제시하는 적절한 품질기준의 준수’를 주문하고 있다. 만약 ‘용역을 구입하지 못하면 가맹본부(본사)가 제공하는 용역 사용’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 가맹점의 업무현황 등을 확인하고 기록하기 위해 본사의 임직원 또는 그 밖의 대리인이 사업장을 출입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했다. 가맹점을 방문해 경영 전반을 챙기고 조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걸 파견법 상의 지시·지휘로 보는 것 자체가 무리”(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고용부의 해석은 끼워맞추기식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제빵사가 빵을 제대로 못 만들면 가맹점주는 본사로부터 반죽을 더 사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가맹점주는 손해를 보고, 본사 매출은 오른다. 그래서 “이익 공유 주장에 논리적 모순이 생기는 셈”(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고용부의 해석을 그대로 적용하면 삼성전자서비스나 현대차 등 대규모 서비스·제조업체의 도급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하청업체가 계약을 잘 이행하는지 살피기 위해 원청에서 하청업체 근로자의 업무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조준모 교수는 “무리한 법 적용보다는 협력업체를 대형화하고 견실하게 만들어 근로자(제빵사)의 근로조건을 개선해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지향점을 찾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는 근로감독을 진행하면서 SPC에 “대안을 제시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SPC 임원은 “고용부의 요구에 따라 회사는 본사와 가맹점주, 협력업체 간의 협의를 통해 제3의 업체를 설립해 제빵사를 수용하는 대안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고용부가 느닷없이 이 방안에 대해 ‘노조와도 협의하라’고 해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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