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미국식 대통령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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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취임 6개월이 된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공무원과의 온라인 대화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집권 1년차 후반기부터 내년 4.15 총선까지 국정운영의 골격을 밝혔다.

특히 '전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날 盧대통령이 강조한 부분은 대통령과 의회 및 의원들 간의 관계다. 이 대목을 미국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여야를 거의 구분하지 않고 의회 주요 지도자와 자주 만나거나 통화를 한다. 이를 통해 주요 현안에 대해 사전에 조율, 협력한다. 특히 대외정책 분야에서 이는 두드러진다.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러시아 등 유럽 순방에 앞서 민주당 소속의 당시 조셉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에게 "유럽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언해 달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이는 대외조약에 대한 무난한 의회비준을 보장받는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의 권위는 '설득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지적도 나온다.

盧대통령의 이날 언급에 대해 윤태영(尹太瀛)대변인은 "기존의 정당을 통한 정치보다는 당파를 초월해 직접 국회 및 여야 의원들과의 대화.타협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盧대통령이 23일 "신당이나 총선에 일절 관여치 않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라종일(羅鍾一)국가안보보좌관도 "민생과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여야 구분 없이 대화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盧대통령은 프랑스식 이원집정제(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의 역할분담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말했다.

"우리 헌법은 프랑스식을 빼다 박았는데 기존의 우리 관행과 아주 달라 지금은 그게 수용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 이 대목은 미묘한 반응을 낳고 있다.

盧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민주당 선대위 해단식에서 "2004년 총선까지는 순수 대통령제로, 총선 이후엔 내각제에 준하는 분권적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말했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도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선거제도가 도입될 경우 내년 총선의 다수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총선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이 같은 약속을 슬그머니 지워버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尹대변인은 "그(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는) 약속이 끝났다고 盧대통령이 선언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盧대통령의 고민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최병렬(崔秉烈)대표는 이미 "야당이 택할 길이 아니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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