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의심" 의료진 신고에도…찾아가지도 않은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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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그래픽. 중앙포토

아동학대 그래픽. 중앙포토

“아동학대가 의심됩니다.”

5세 남자아이 학대 사건으로 본 아동학대 전문가들의 비전문성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 부실한 조사, 목포경찰서는 소극적 태도 #결국 한 달 뒤 학대 당한 아이 또 실려온 뒤에야 다시 수사

지난해 9월 28일 광주광역시 한 대학병원 의료진은 응급실에 실려 온 5살 A군을 보고 아동학대를 직감했다. 아이는 오른팔이 부러진 데다가 멍이 든 상태였다.

의료진의 신고를 받은 해당 대학병원 관할 광주 동부경찰서는 A군의 집이 있는 목포경찰서에 수사 필요성을 알렸다.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도 조사에 나섰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전경. 중앙포토

광주지법 목포지원 전경. 중앙포토

그러나 목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A군을 만나보지도 않고 ‘아동학대가 아니다’고 결론냈다.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이 이런 결론의 근거가 됐다.

정작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는 부실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A군의 학대 피해를 신고한 의료진을 면담하지 않고 ‘학대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최초 신고자이자 아이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다.

A군을 면담하는 과정도 부적절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어머니 최모(35)씨와 함께 있던 A군을 병원 내 분리된 공간으로 데려가 피해 여부를 묻긴 했다. 그러나 ‘물리적 분리’를 넘어 아이가 피해 진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서적 분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면담에서 A군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머니 최씨는 면담에서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남지방경찰청 전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지방경찰청 전경. [사진 전남경찰청]

결국 A군에 대한 수사는 한 달 뒤인 지난해 10월 29일 무렵에야 이뤄졌다. A군은 이날 또다시 대학병원에 실려 왔다. 아이의 어머니 최씨의 내연남 이모(27)씨가 또 A군을 폭행해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게 한 뒤다. A군은 전문가들의 소극적이고 부실한 초동 조사·수사 탓에 한쪽 큰 피해를 당한 뒤에야 주변의 도움을 받게 됐다.

목포경찰서 관계자는 “통상 아동학대 사건이 접수되면 전문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을 토대로 학대 여부를 판단하고 수사에 착수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아이의 상태가 심각했던 만큼) 경찰관이 아동보호전문기관 별개로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목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담당 경찰관과 팀장급 상급자 등 2명에 대한 감찰조사를 진행했다. 조만간 징계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은 담당 경찰관을 아동학대 사건 업무에서 배제한 상태다.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 [사진 네이버 거리뷰]

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 [사진 네이버 거리뷰]

이씨는 지난 27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의 1심 재판에서 A군을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8차례에 걸쳐 폭행해 한쪽 눈을 잃게 한 혐의(아동학대 중상해) 등으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적용한 살인미수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어머니 최씨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장화정 관장은 “경력 1년 미만의 상담원이 어머니 최씨가 미혼모라는 사실에 집중한 탓인지 아이와 함께 보호의 대상으로 착각한 업무적 실수가 있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전경. 중앙포토

광주지법 목포지원 전경. 중앙포토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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