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전문 作詞家 양성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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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 민족은 노래를 매우 좋아하는 민족이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노래를 좋아하는지는 전국에 노래방이 2만3천개나 된다는 데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한국인의 특성으로 속희가무라는 단어를 썼을까.

이런 기질과 한국인의 재능이 결합돼 최근의 한류 열풍도 가능해졌다고 본다. 최근의 한류 열풍, 보아 등 국제화된 우리 가수들의 영향력 등에서도 볼 수 있듯 대중가요는 과거의 고급음악의 하위개념에서 벗어나 이미 상당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중음악들이 한국의 음악, 한국 특성의 음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곡조와 함께 감동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는 노랫말의 중요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은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과 같은 애잔한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만일 이 노래를 노랫말 없이 그냥 가락만 흥얼거렸더라면 그와 같은 가슴 찡한 감동이 있었을까?

그만큼 아름다운 노랫말이 우리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할 것이다. 아름다운 노랫말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작사가의 재능과 영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체계적인 작사 교육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작사가가 자신의 재능과 영감만으로 혼자 노력해 전문가가 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여러 대학에서 실용음악에 관해 가르치는 학과가 생기고, 사설학원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기관들의 교육과정은 작곡이나 편곡 내지는 가창 위주로 짜여 있을 뿐이며 체계적인 작사 교육을 하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은 아직도 전무한 실정이다.

작곡이나 편곡 등과 마찬가지로 작사도 당연히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쳐야 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국어로 된 노랫말을 만드는 것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기관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 시대를 풍자하고 우리 삶의 슬픔과 기쁨을 표현해 주는 노랫말이 하루 아침에 쓰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가요에 대해 노랫말이 저급하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체계적인 교육기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노랫말의 저급성만을 탓하는 것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무책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작사.작곡가의 수는 4천여명에 이르지만 그중에서 작사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이러한 통계는 결국 성공한 몇몇 작사가를 제외하고는 전문적으로 작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성공한 몇몇 작사가들은 매년 많은 히트곡을 만들고 그에 따른 인기와 부를 향유하지만, 엄청나게 쏟아지는 물량의 노래에 비해 전문적인 작사가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가요의 가사 중에는 영어도 국어도 아닌 국적불명의 언어들이 판을 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한편의 좋은 노랫말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평안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삶의 활력소 노릇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한.일 문화개방이 이뤄지면 앞으로는 더 많은 외국의 노래들이 들어오게 될 터인데, 이때 우리 문화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모국어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노랫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계속 태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학교에서도 모국어로 된 우리 노랫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작사가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건우 작사가.한국음악저작권協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