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름 다른 모습 … 6000개 ‘모니카 인형’ 이주여성 삶 품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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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톡투미’ 이끄는 이레샤 대표, 다문화 요리 사업도 

재활용 헝겊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있는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 [오종택 기자]

재활용 헝겊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있는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 [오종택 기자]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talktome)’에서 만드는 ‘모니카’ 인형은 백색 피부에 금발을 휘날리는 바비인형과는 거리가 멀다. 재활용 헝겊을 바탕으로, 네 가지 얼굴색을 띠고 머리카락 색도 각양각색이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약 6000개의 인형을 만들었지만 같은 모양의 인형은 하나도 없다.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스리랑카 출신의 대표 이레샤 페라라(42)는 “인형 제작은 재능 기부로 참여하는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이 주로 한다. 우리는 몸통·팔다리용 헝겊만 보내주고 나머지는 각자 제작하게 하니 형태가 다 다르다”며 “같은 이름에 다른 모습의 모니카를 통해 자연스레 다양성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멀리서 왔다는 의미로 ‘머니까’에서 이름을 따온 모니카 인형은 1년에 1000개 정도 생산돼 해외 불우 어린이와 국내 어린이집 및 학교에 무료로 보내지고, 일부는 판매된다.

톡투미는 이레샤가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들을 돕고자 설립한 단체다. 명품 브랜드 회사의 디자이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했던 이레샤는 2002년 한국지사로 발령받으며 처음 한국을 찾았다. 이후 한국인 남편을 만나면서 직장을 그만둔 뒤 정착했다. 주변의 시선과 외로움 때문에 위축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이레샤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1년 동안 업무 외에는 모두 ‘안녕하세요’란 말밖에 안 하더라. 아이를 낳은 후 디자인 전공을 살려 재취업을 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주여성 대부분이 이레샤와 같았다.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능력이 있어도 취업이 안 됐다. 이레샤는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다른 어려움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친한 이들끼리 톡투미를 만들었다”고 했다.

재활용 헝겊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있는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 [오종택 기자]

재활용 헝겊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있는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 [오종택 기자]

모니카 인형과 함께 2012년 시작한 ‘말하는 레시피·도시락’도 톡투미의 주요 활동이다. 요리교실을 열어 스리랑카·필리핀·베트남·가나 등 6~10개국의 요리를 가르쳐 주거나 도시락 판매 및 출장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은 이 활동에 참여해 자신감을 찾고 일당도 받는다. 남은 수익금은 이주여성들의 모국에 지원하고 있다. 스리랑카 갈루타라 지역의 한 학교에 매달 75만원을 기부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직접 찾아 봉사활동과 함께 4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단출한 커뮤니티로 시작됐던 톡투미는 현재 온라인 회원 5000명, 오프라인 활동 회원은 전국 200명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레샤는 앞으로도 이주여성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남는 게 목표다. 이레샤는 “다문화는 국가나 인종이 다양하다는 게 아니라 문화가 다양하다는 뜻”이라며 “국가·인종이 아닌 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존중받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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