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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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필귀정. 모든 일은 결국 올바른 이치대로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고전속의 명구가 아니다.
이병철회장은 소년시절 선친으로부터 이 좌우명을 받았다. 유학에 밝은 선비였던 그의 선친은 스스로 이 문구를 평생의 처세훈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이회장은 한국 최대의 기업군을 이끄는 세계적인 경영인이었지만 『기업에는 지름길이 없다』고했다. 「경영의 귀재」는 그 「지름길」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멀고 험한 길을 강철같은 집념과 바위같은 의지와 불같은 추진력으로 밀고 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같다.적어도 이회장에겐 그것이 귀재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세인들은 그를 두고 「용병의 달인」이라고 말한다. 기업의 세계를 전장에 비유한다면 「용병」이라는 말에는 실감이 있다.
이회장은 특유의 용인원칙을 갖고 있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의인물용·용인물의)』
20대의 청년시절 그는 벌써 이런 원칙을 스스로 터득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용인의 계율은 반세기동안 그의 신조로 지켜졌다. 사장들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그의 대범한 경영스타일은 바로 그 용인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은 「삼성」적 경영의 철칙이기도 했다. 전권에는 그와 똑같은 비중의 책임도 따른다는 것이 이회장의 용인술이었다.
따라서 문책에는 분명했다. 거의 하나의 예외도 없이 권한과 책임을 체크하고 책임의 경중을 따졌다. 그 점이 이회장을 카리스마적 사업가로, 비정한 경영인의 인상으로 비추어졌는지 모른다.
이회장 문하에서의 경영수업은 고되고 엄격하고 끝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세계의 신간서적을 종횡으로 섭렵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정보에 관한한 그는 언제나 정신이 맑은 청년이었다. 주요 전문 서적은 그 분야의 사람에게 읽혀, 날짜와 시간을 약속해 잊지않고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이 목적이아니라 필요한사람에게 그 책을 분명히 읽혀 터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만큼 용이주도하게 사람을 키웠다.
「한국 최고의 기업인」이라는 타이틀은 적어도 이회장에게는 기회의 산물이기 보다 비범한 과정과 독특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고인을 높이 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면모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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