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은행 장사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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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조흥은행장에 내정된 최동수(57.사진) 전 조흥은행 부행장이 노조의 반발로 정식 업무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32년간의 금융인 경력 중 노조와의 인연이 적지 않다.

우선 외국계 은행에서 직접 노조를 만든 경험이 있다.1969년 대학졸업 후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이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 그러나 1년 남짓 지났을 무렵 이 은행은 한국인 직원을 감원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노동운동 자체가 금기시되던 때라 서울시내 허름한 여관에 몰려 숨어들어가 밤을 새워가며 노조설립을 준비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동료를 규합해 노조설립을 주도하고 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의 무기는 파업이 아니라 사측을 설득할 치밀한 대응논리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두번째 직장인 호주의 웨스트팩은행 서울지점에서 지점장으로 일하던 89년 9월 노조가 주도하는 파업이 벌어졌다. 그는 무려 2백22일간 계속된 파업 기간 동안 노조와 끈질긴 대화를 계속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여신전문가로 조흥은행 부행장으로 영입된 崔내정자는 조흥은행에서 일한 2년6개월을 회고하며 각별한 애정과 회한을 드러냈다.

그는 "워크아웃 기업 80여개 중 27개의 주거래 은행이 조흥은행이었다. 나는 죽기 살기로 일했고, 은행에 적어도 2조원을 벌어줬다.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흥이 절로 났던 때"라고 말했다.

조흥노조가 자신의 행장 내정에 반발하는데 대해 그는 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하지는 않았다.

"은행이 매각된 마당에 직원들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솔직히 30여년 조흥은행에서 일한 분들만큼 그들의 정서를 더 잘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정서만으로 밥을 먹을 수는 없다."

서울대 상대 2년 후배인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과 "너는 원래 증권 장사꾼이고, 내가 진짜 은행 장사꾼"이라는 농을 건내곤 했다며 은행 경영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3년 후엔 조흥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이 신한은행을 앞지르도록 하겠다"며 "조흥 출신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글=장세정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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