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자라처럼 살아가시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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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느 학생이 자취방을 옮긴다고 자기가 기르던 자라 한 마리를 내게 주고 갔다. 냉면 그릇보다 조금 큰 유리 그릇 속에 돌멩이를 몇 개 놓고 자라 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 내 책상에서 잘 보이는 창가에 두었다.

그런데 간혹 쳐다보면 하루 종일 자라가 하는 일이라곤 늘 똑같았다. 유리 그릇 위로 기어오르다가는 거의 다 올라올 즈음 툭 떨어지고 다시 올라갔나 하면 또 툭 떨어지고, 너무 안타까워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얼마 전에 들은 우스갯소리 하나다.

도시에서 온 부자가 해변을 거닐다 자기 배 옆에 드러누워 빈둥빈둥 놀고 있는 어부를 보고는 어처구니 없어 한다. "여보쇼, 이 금쪽 같은 시간에 왜 고기잡이를 안 가시오?"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놨습니다."

"시간 날 때 더 잔뜩 잡아놓으면 좋잖소."

"그래서 뭘 하게요?"

"돈을 더 벌어 더 큰 배 사고, 그러면 더 멀리, 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더 많이 잡고, 그러면 돈을 더 많이 벌어서 그물을 더 사고, 그러면 고기를 더 많이 잡고, 그러다 보면 나처럼 부자가 되겠지요."

"그러고는 뭘 합니까."

"아, 몰라서 묻소? 그렇게 되면 편안하고 한가롭게 삶을 즐길 수 있잖소."

부자의 말에 어부가 대답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그냥 우스갯소리로 지나치기에는 문득 내 삶을 돌이켜 보게 하는 이야기다. 내가 이야기 속의 어부를 만났더라면 아마 부자와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이미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더, 더, 아무거나 더 손에 넣고 보려고 아등바등 옆도 쳐다보지 않은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레이철 레멘의 '부뚜막 지혜'를 읽었다. 심리치료 전문 의사인 작가는 자신이 상담했던 환자들에 대해 적고 있었다. 2년 전 전립선암에 걸리고 나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존에 관한 이야기였다.

성공한 실업가로서 그는 늘 바쁜 일정에 시달렸었다. 그는 암이 걸리기 전 자신이 추구했던 행복의 조건은 "과자가 있는 삶"이었다고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과자를 원하듯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늘 무언가를 원했다. 그 과자란 때론 돈이고, 때론 권력이고, 또 때론 새로 뽑은 차요, 큰 사업 계약, 호화주택가의 주소였다.

존은 말했다. "내 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아이는 행복해 합니다. 그렇지만 그 과자가 부서지거나 내가 그것을 치워버리면 아이는 화내고 슬퍼합니다. 저도 늘 그런 식으로 과자를 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면 기쁘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나고 슬펐지요. 이제는 그 과자가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는 세살이고 나는 마흔세살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 40년이 걸린 셈이지요. 과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걱정하느라, 더 많은 과자를 뒤로 감추느라 바빴습니다. 그런데 2년 전 암이 내게 물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과자인가 삶인가?'이제는 알고 있지요. 삶 자체가 과자라는 것을…."

창가의 자라를 보니 여전히 미끄러운 유리 그릇의 벽을 타고 오르다가 툭 떨어진다. 다시 한번 올라간다. 다시 툭 떨어진다. 악착같이 다시 오른다…. 차마 더 이상 보기 싫어서 나는 자라 그릇을 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았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악착같이 오르려다 떨어지곤 하는 그 모습이 꼭 나의 모습 같아서….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