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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대통령 칼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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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3박4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9일 떠난 A P J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은 채식주의자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이라 술도 멀리한다. 75세가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았다. 공관 뜰에 허브를 심고 공작과 토끼를 키운다. 무욕(無慾)과 내면의 성숙, 그리고 인간 사랑을 강조한 '영혼들을 인도하며(Guiding Souls)'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이처럼 조용한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삶은 치열했다. 본디 우주항공 공학자로 1980년 인도의 첫 우주로켓을 만들었다. 90년대엔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인도 국민은 그를 '미사일 맨'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첫 인도산 전투기 개발을 맡았으며 98년 다섯 차례에 걸친 핵실험도 주도했다.

그래서 인도에선 과학입국과 기술자립, 그리고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통한다. 장관급인 과학고문에도 발탁됐다. 힌두교 나라에서 소수파 무슬림이 영웅이 된 것이다. 무슬림은 이 나라 인구의 10% 정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6개월 연수 간 것을 빼곤 모든 공부와 연구를 인도에서 했다. 과학기술로 나라를 가난에서 구하는 게 필생의 꿈이었다. 99년 1월 펴낸 자서전 '불의 날개들(Wings of Fire)'에서 자신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토종 과학자'라고 소개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이슬람교와 힌두교 모두에 경의를 표했다. 그래서 종교 갈등에 시달려온 인도에서 균형 감각이 있는 큰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70세가 된 2001년 홀연히 낙향했다. 고향의 한 이공계 대학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변혁' 등을 강의하는 교수로 변신했다. 전국을 돌며 고교생들에게 과학자의 꿈을 심어주는 강연 봉사도 했다.

당시 집권당인 우파 BJP당이 그런 그를 눈여겨봤다. 칼람은 2002년 이 정당의 후보로 나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86.9%의 지지율로 5년 임기 대통령에 당선했다. 내각책임제라 실권은 없어도 국가원수다. 인간 사랑을 중시해 남을 공격하지 않기에 우파 대통령이지만 2004년 들어선 좌파 연정과도 관계가 원만하다고 한다.

그는 저서 '영혼들을 인도하며'에서 "따로 바라는 게 있거나, 뭔가 업적을 남기려고 들거나, 마음이 권력에 가 있으면 이기심이 발동해 새로운 게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며 무욕이 창조적 공직 수행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왔던 장관 후보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채인택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