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한 선거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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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선거일이 12월16일로 확정되고4당 대권주자들의공식 추대절차도 마무리되었다. 선거일이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당의 득표활동도 전면화, 본격화될 참이다.
실로 16년만에 치르는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에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게 집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선거가 지니는 헌정사적 의미보다 누가 대통령이 될것이냐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본말의 전도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두말할것도 없이 이번 선거는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선출, 정국불안의 근본원인인 정통성 시비를 잠재우는데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투·개표 과정은 물론 선거전의 전과정이 공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으면 안된다. 정권의 정당성은 과정의 페어 플레이가 전제되어야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뿐더러 이번 선거는 퇴행적인 과거의 정치사를 청산하고 우리의 정치수준을 참다운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전환시키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현실정치의 여러 여건으로 미루어 그것이 과욕일수는있어도 우리의 지향하는바 방향과 목표는 뚜렷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선거 전초전과 앞으로의 본격 선거전의 양상을 예상하면 이같은 목표가 얼마만큼 충족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이번 선거에서도 선거분위기를 해칠 부정적 요소로 관권개입, 물량공세, 공약의 남발, 지역감정, 인신공격과 중상 모략등이 벌써부터 판을 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연일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공약의 홍수는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어디서 재원이 염출되며, 어떤 절차를 밟아 시행하겠다는 것인지 으례 천문학적 단위의 사업공약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학의 설립·확충공약도 많아 그대로 되면 각 고을에 고등교육기관 하나쯤은 들어설 것처럼 보인다.
한표라도 더 모아야하는 급박한 심정을 이해한다해도 도무지 상식의 궤를 넘는 것같다. 스스로는 메거톤급 공약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양식있는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될만한것도 수두룩하다.
새로 뽑히는 대통령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대통령이 아니고 권한의 분산과 법에 의해서만 권한을 행사해야할 대통령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공약의 홍수는 그래도 나은편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유권자가 현명하면 실현가능한 공약,공약이 되고말 공약쯤은 판별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의 난무, 공무원의 중립, 막대한 물량공세, TV의 편향보도등에 이르면 선거가 과연 공명·공정하게 치러질 것인지, 그럭저럭 선거까지는 치러도 선거후 아무런 후유증없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보장될지 걱정이다.
물론 우리정치의 수준이 하루아침에 선진국수준에 이를수도 없고 부정적 요인들이 일조일석에 청산될수도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수많은 국민들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만들어낸 정통성 회복의 절호의 기회라는점만은 누구나 명심해야 한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이번 선거의 이같은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선거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겠지만 유권자들도 정치집단이 유도하는대로 과열분위기에 휩쓸려 부화뇌동하지 말고 주권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바가 무엇인지부터 냉철하게 판단해야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번 선거는 과거의 부정적 정치풍토를 깨끗이 청산하고 해결하는 계기가 되어야한다. 이번 선거가 우리의 정치수준을 한단계 높이느냐 여부는 결국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다. 유권자들이 당장 해야할 일은 선거의 모든 과정이 공정하고 공명하게 진행되도록 각성하고 감시하는 일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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