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화」개척한 "호남의 어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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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5일 80세로 타계한 남농 허건화백은 신남화를 개척한 한국화의 거봉이기도 하지만 한평생 고향을 지키면서 향토문화를 가꿔온 호남의 어른으로서 숭앙을 받아왔다.
남농하면 조선말 남화의 대가인 조부 소치(허련), 부친 미산(허형)의 뒤를 이은 남종문인화의 명가 「운림산방」의 3대작가로 유명하다.
운림산방은 3대가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진도에 있다. 남농은 82년 폐허가 된 이곳을 완전복원한 바 있다.
남농은 선대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가통의 계승에 그치지 않고 신남화란 새분야를 개척, 「남농화풍」의 독특한 세계를 구현했다. 신남화란 『한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순수한 우리의 정경을 그리는것』이라고 남농은 설명한바 있다. 남화의 관념철학에서 벗어나 실경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것이 요체라 했다.
남농의 대표작으론 「심수」「산사」「금강산소견」등이 꼽힌다. 그는 말년에 산수와 노송에 특히 원숙한 경지를 보여줬다.
그는 항상 소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이유는 『고고한 기품과 기상이 좋아서』였다.
남농은 1907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15살때 부친 (미산) 밑에서 첫 붓을 잡은 이래 비년 목포로 이주, 목포상업전수학교를 나온후 제9회 선전부터 23회 연입선했으며 46년엔 특선 및 총독상을 수상했다. 해방후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대한민국문화훈장 은관을 받고 예술원회원을 지냈다.
남농은 지난81년 일생동안 수집한 수석 2천여점과 선대로부터 내려온 서화골동 (약10억원상당) 을 국가에 헌납했다. 목포시는 이를 바탕으로 82년 용해동에 향토문화관을 세웠으며 미술관과 남화의 산실기능을 하는 남농기념관은 바로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남농의 제자중엔 조방원 신영복 김명제 곽남배 이옥성 허문씨등이 중진으로 활약중이고 이들의 모임인 남인회가 중심이 돼 기념관을 이끌어갈 계획이다.
소치이래 화력 1세기를 넘기는 운림산방의 화맥은 남농의 조카 허문(4대), 손자 허전(5대)씨로 뻗고 있어 새삼 그 유장함을 느끼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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