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원칙은 집중... 둘로 나뉜 HP, 각자 빠르게 성장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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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팩커드(HP)하면 프린터나 컴퓨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HP의 사업 영역은 거대하다. 78년 전 실리콘밸리의 차고에서 출발한 ‘원조 벤처기업’ HP는 오디오 계측기에서 시작해 전자의료장비ㆍ컴퓨터ㆍ복합기 등으로 사업을 확장왔다. 그러던 HP가 2015년 11월 프린터ㆍ컴퓨터를 만드는 HPI(HP인코퍼레이티드)와 기업용 IT 솔루션을 제공하는 HPE(HP엔터프라이즈)로 분사했다. “78년 전통의 기업을 둘로 나눈 건 그만큼 변신이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피터 라이언 HPE 영업총괄사장(CSO)의 설명이다. 한국의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HPE 디스커버 포럼’을 개최하러 한국을 찾은 그를 3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터 라이언 HPE 영업총괄사장

피터 라이언 HPE 영업총괄사장

-HP가 둘로 나눠진 걸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
“모든 산업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다. 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회사만 살아남을 수 있다. HPI와 HPE는 사업 모델부터 고객, 경쟁사, 체인 관리 등 모든 게 달랐다. 각자 변화에 집중하려면 나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분사한 지 1년 반이 넘었는데 옳은 결정이었나.
“그렇다. HPI가 지난해 삼성전자의 프린터사업부를 인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잘하는 사업에 집중하게 된 거다. HPE 역시 분사 이후에만 5개의 회사를 인수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
-변신은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숙제다. HP의 변신 원칙은.
“집중이다. HPI와 HPE가 결별한 것도 집중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HPE 역시 분사 이후에도 서비스 부문을 분사시켰고 소프트웨어 부문을 분사시킬 예정이다. 핵심 역량에 집중하려면 우리의 전략과 맞지 않은 조직을 떼어내고 그렇게 확보한 돈으로 우리 전략에 맞는 기업을 사들여야 한다. 한국에선 방산ㆍ화학 사업을 매각한 삼성이 그런 작업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HPE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는 기업의 데이터센터, 인터넷 네트워크 등 IT 환경을 구축해준다. 한국의 경우 데이터센터 서버 시장의 45%를 우리가 차지하고 있다. 이런 IT 기술로 기업의 변신을 돕는다. 예전의 IT 기술은 혁신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기업의 핵심 업무는 따로 있고 IT 기술이 결합되면 그 업무를 더 쉽게 수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IT가 혁신을 주도한다. IT 기술로 변신을 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건축자재 유통업체 홈디포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사물인터넷(IoT) 솔루션으로 매장을 찾은 소비자는 스마트폰에 뜨는 매장 지도를 통해 어떤 제품을 사려면 어느 코너로 가야할지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업체는 고객의 동선에 맞춰 제품을 제안할 수도 있다. 고객은 편하게 쇼핑을 즐기고 업체는 더 많은 상품을 팔게 된 거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리바이스 스타디움도 좋은 예다. 풋볼 경기를 보는 관객들은 앉은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팝콘이나 콜라를 시켜 먹고, 풋볼 관련 제품을 주문할 수도 있게 됐다.”
-이런 식의 매장 개선을 궁극적인 변신이라 볼 수 있을까. 미래엔 모든 유통업이 온라인화되는 게 아닐까.
“미래는 훨씬 다양한 모습이 될 거다. 우리가 ‘하이브리드(Hybridㆍ잡종) IT’를 강조하는 이유다. 내 딸들은 디지털 세대지만 백화점 쇼핑도 즐긴다. 미국 소비자들은 음원 구매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LP 매니어는 갈수록 늘고 있다. 미래엔 종이가 완전히 사라질 거라거나 매장이 없어진다는 추측은 극단적이다. 기업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줄 수 있어야 한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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