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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평화를 보장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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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주의 평화 이론'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견해는 이미 칸트나 토크빌도 주장했던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선천적으로 독재자보다 평화를 지향한다"고 설파했다. 오늘날 그들의 후계자들은 "민주주의국가끼리는 단 한 번도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평화의 영역도 함께 넓어질 것"이란 부시 대통령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미국.프랑스.영국.이스라엘 등 민주주의국가들이 각종 전쟁에서 독재국가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 평화 이론'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데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적어도 최근의 세 가지 사례가 이 같은 접근법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이라크다. 사담 후세인이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독재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전쟁으로 민주주의를 '강요'하려는 전략은 결코 '평화적'이지 못했다. 되레 엄청난 피바람을 불렀고, 피의 악순환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최근엔 총선도 치렀지만 평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둘째는 팔레스타인이다. 얼마 전 선거를 통해 파타당의 일당 독재체제가 무너졌다. 하지만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하마스는 테러를 신봉하고 이스라엘의 파괴를 공언하고 있다.

셋째는 이란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 하지만 그가 집권한 뒤 이란은 더욱 위험한 나라가 됐다.

이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통한 평화의 추구는 이론적으로는 매우 고귀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악몽에 가깝다는 점이다. 자유 선거가 오히려 '괴물'들을 키워 중동의 평화지수만 떨어뜨린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의한 평화 정착의 꿈은 버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민주주의가 독재정치보다 낫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들은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자유 선거는 처음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 단계에 도입해야 한다. 이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마스에 표를 몰아줬을까. 치솟는 실업률, 빈곤의 악순환, 온갖 부정부패 등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서방세계는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지만 사실은 그 돈을 건전한 재정과 자유시장의 도입, 깨끗한 정부, 사법부 독립 등 생산적 투자에 쓰도록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다. 파타당이 그렇게 했다면 하마스가 이처럼 몰표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복잡한 게임이다. 서방세계에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데도 200년이 걸렸다. 선거가 첫째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대신 먼저 정치.경제.사법.언론의 영역에서 합리적인 체제를 갖춰 가야 한다. 한국의 사례를 보라. 효율적인 관료주의 하에서 경제성장을 이루자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뒤따랐다. 이러한 고려 없이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내일 당장 자유 선거를 하라고 압박한다면 그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유를 확산하기는커녕 자유의 적들에게 빌미만 제공할 뿐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겸 편집인

정리=박신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