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現代 '동앗줄' 필요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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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룹은 비자금 사건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몰라 향후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현대 측은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난 데다 당시의 핵심 인물 대부분이 퇴진한 상황이기 때문에 파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단 기대 섞인 분석을 하고 있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12일 "과거 비자금 사건이 鄭회장의 자살 이후에도 계속 불거져 곤혹스럽다"며 "2000년에 벌어졌던 일로 더 이상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검찰의 비자금 사건 수사가 장기화돼 남북 교류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 측도 "비자금 조성 등에 연루됐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당시 경영진은 이미 다 사퇴하지 않았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현대가 2000년 당시 여러가지로 어려웠기 때문에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현대는 2000년 봄부터 불거진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인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2000년 3월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을 그룹 단독 회장으로 승인 발표하면서 한때 경영권이 정몽헌 회장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과 5월 현대투신과 현대건설이 잇따라 자금난에 몰리면서 몽헌 회장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자동차 계열사들은 같은 해 8월 그룹에서 분리해 나갔다. 이런 가운데 몽헌 회장 측은 그룹의 경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 자금 수요가 많은 정치권에 접근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현대는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여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에 따라 현대는 최근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것처럼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을 대상으로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현대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하는 데 적극 기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구나 현대는 자금난 속에서도 청와대와 정치권에 직거래를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는 정부의 자금 지원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재경부.금감위 등은 鄭회장의 사재 출연과 이익치 회장 등 가신들의 우선 퇴진을 요구하며 팽팽히 맞섰다.

이런 위기를 정치권과의 직거래로 돌파하려 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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