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정신, 어디 갔나|감사에 드러난 치외법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사회에서는 치외법권이란 있을 수 없다.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마저도 국민에 의해 수임되고 법에 따른 엄격한 규제 범위 안에서만 행사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특권이 용인되고 존재하는 사회란 결코 민주사회 또는법치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면 이 기구가 누려온 온갖 치외법권적 특권과 낭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영종도에 연수원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정식허가도 나오기 전에 18만평의 매립공사를 했으며, 국공유지를 74만평이나 무상대부 받았다고 한다.
체육대회를 한다고 국가예산을 75억원씩이나 빼다 쓰고 국가공무원을 마음대로 데려다가 부리기도 했다. 탈법을 자행하고 정부기관과 공무원을 하부조직처럼 부릴 수 있었다면 그 특권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박정희대통령의 제창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초 이 운동은 농민들의 자조·자립·협동정신 고취를 깃발로 내세운 농촌운동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농한기를 허송세월 하던 농민들에게 소득증대사업에 나서도록 함으로써 농촌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농로를 넓히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는데 원동력이 되었고 『하면된다』는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농촌의 경제사정을 무시한 행정지시 일변도의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농가부채가 늘고 일부에선 전시위주의 행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새마을운동의 사업규모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정부 예산지원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새마을 중앙본부에 대한 국고지원이 지난 4년동안 무려 16배가 늘어난 것만 보아도 국민의 의혹과 빈축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국회에서는 근래에야 몇차례 새마을본부에 대한 시비가 오르내렸으나 그때마다 정부·여당은 마치 불가촉의 「성역」인양 어물쩍 넘기기가 일쑤였다. 최근 민주화열풍 덕분으로 발족한지 무려 17년 동안이나 두꺼운 베일에 가려있던 새마을본부가 첫 감사를 받았고, 드디어 그 실상의 일부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소관부서인 내무부는 영종도의 불법개발과 관련된 공무원을 문책키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수인에 불과한 말단공무원 몇 명의 문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각종 탈법과 방만한 사업의 주체가 되는 중앙본부에 대한 원천적인 문제 추궁과 함께 그 동안의 사업내용도 소상히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사업 방향에도 일대· 전환과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