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참여정부, 큰 정부 지향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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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제학이 등한시했던 것 중의 하나가 경로문제이다.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역시 경로문제로 인해 야기되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실물부문이 아니라 화폐부문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실물부문의 경색이 기대심리를 자극하여 화폐경색을 불러왔고, 화폐공급의 경색은 실무부문을 더욱더 크게 위축시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경제는 생산설비의 부족으로 인한 물자부족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설비에 의한 과잉생산에도 불구하고 화폐의 공급부족으로 인해 소비수요 부족현상이 야기되었다. 자연히 생산부문의 재고 누적이 기업이윤 감소로 이어져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문제를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결국 생산, 유통, 소비,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제순환 과정이 순조롭게 돌아가야 하지만 소비과정이 막혀버림으로써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 등장한 것이 고용불안이었다. 고용불안은 마침내 엄청난 실업을 야기했다.

이 일련의 경로에서 세계경제가 정상적인 성장을 계속하자면 재생산이 축소 혹은 단순 재생산의 반복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져 증가하는 노동인구를 흡수할 수 있어야만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류는 의학적으로도 큰 진보를 이룸으로써 인구가 급증하게 된다.

당시의 세계경제가 정상행보를 계속하자면 이 늘어나는 노동인구를 흡수할 수 있도록 설비투자의 증가가 지속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생산설비의 과잉은 오히려 이 시기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화폐부족으로 인한) 소비수요의 부족으로 이어져 경기는 극심한 침체기를 맞는다.

결국 그 여파가 주식시장에 파급되어 주가폭락으로 이어졌고 세계경제는 암흑기를 맞게 된다. 이 과정에 작용했던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 함께 세계 금융질서의 붕괴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세계경제의 체질 변화가 불가피했고, 그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보다 강조되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이며, 케인즈는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정부의 역할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정부의 역할 문제는 단순히 공무원 숫자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입안 및 집행자로서의 정부 역할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판단 기준을 정부 시장간섭의 정도 문제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 과연 큰 정부 혹은 작은 정부 중 어느 형태를 지향하고 있는가.

사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정부의 역할문제인 점은 맞다. 그러나 그 역할을 역량(업무능력)과 시장간섭의 문제로 세분해야 하며, 단순히 역할만으로 정부의 크기를 판단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정부선택의 문제는 시기적으로 정부가 어떤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세계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큰 정부를 요구했다. 이는 소비수요 창출을 위해서 화폐의 공급을 늘려야 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길바닥에 돈을 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최근 일본은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소비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일부 저 소득층에 상품권을 직접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일국의 생산 상태이다. 일국의 경제가 과잉생산에 직면해 있다면 일정량의 화폐공급을 늘리더라도, 정치적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물가불안이 초래되는 등 경제적 문제는 야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가 늘어남으로 생산증가가 불가피하고 생산의 증가는 적어도 고용수준을 현 수준으로 유지시키거나 늘릴 것이다.

현대사회 혹은 현대경제가 당연한 문제는 경로의 문제이며, 여하히 생산 부문과 소비부문이 잘 연계되어 지속적으로 생산을 확장할 수 있으며, 생산의 증가가 생산설비의 확대로 이어져 완전고용수준을 달성할 수 있느냐 여부다.

세계화로 인해 기술의 해외 이전 속도 및 자본의 이동속도가 매우 빠른 만큼 이제 일국의 경제적 역량을 결정하는 변수는 인구수이다. 총수요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인구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해당국의 경제는 침체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유가를 포함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심각한 인플레이션 국면에 빠지지 않고 순항하는 주된 이유는 생산설비가 유휴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가 증가하면 언제든지 생산이 증가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초과수요로 공장설비가 100% 이상 가동되어야 한다면 자연발생적으로 공급축소로 이어져 물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생산시설이 철거되거나 해외로 이전되었지만 여전히 생산설비(공장)가동률은 70% 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고용수준을 안정적으로 높여갈 필요가 있다. 고용증가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수확대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사회복지 예산을 증액하는 등 분배부문에 치중하는 것의 정당성을 우리는 이 곳에서 찾게 된다.

사실 보다 엄격하게 한국의 사회적 현실을 들여다보면 현 시대상황은 보다 큰 정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한국사회는 새로운 사회 즉 선진형 사회로 막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체제의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이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도 정부의 역할은 크게 신장되어야 한다. 결국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정부형태는 경제학적 의미의 큰 정부라기보다는 조절자 혹은 균형자로서의 정부 역할론 즉 업무처리 역량에 무게 중심이 실여있다.

경제학적 의미에서 큰 정부라 함은 자원의 배분으로부터 집행에 이르기 까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정책의 결정 및 집행자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자연히 작은 정부라 함은 경제적 의사결정을 시장에 맡겨놓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사실을 기준으로 우리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를 판단해야 하며, 공직자 수의 증감을 들어 큰 정부다 작은 정부다고 논하는 것은 이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참여정부 들어 공직자 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증가한 내용이 각종 시장 규제 부서가 아니라 보건, 의료, 위생, 교육, 안전, 소방 등 대민 봉사관련 부서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공무원의 수가 증가하되 시장을 규제하는 부서에 치중해 있다면 바야흐로 참여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앞에서 제기한 것처럼 참여정부의 공무원 수의 증가는 정부규제와는 관계없는 부서를 중심으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러한 조치는 늘어나는 업무를 충족하기 위한 것으로서 시장규제 혹은 간섭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결코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조절자 혹은 균형자로서의 역할 확대에 따른 정부 업무처리능력의 배양 즉 정부 업무 확대에 따른 단순 고용확대 조치이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결코 큰 정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지 않다. 참여정부는 어디까지나 시장간섭을 배제하고 생산, 유통, 소비, 재생산의 경제 순환 과정에는 간여할 의사가 없다. 다만 이 순환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을 충원하고 있다.
[디지털국회 정득환]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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