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에만 온 삶을 바치는 고셔병 환자들의 ‘평범한 삶’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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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유한욱교수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유한욱교수

매년 2월 마지막 날은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희귀질환자를 돕기 위해 유럽희귀질환기구가 제정한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희귀질환은 일반인은 물론 의료진조차 질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으며, 아직도 수많은 질환들이 치료법은 물론 원인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정확한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심신의 고통을 받고 있다.

전 세계 환자단체가 주도하는 세계 희귀질환의 날의 올해 주제는 환자들의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줄 질환과 치료제 등에 대한 ‘연구 개발’이다.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희귀질환의 규명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환자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약 7천여 종의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것은 5%에 불과하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은 개발 자체가 어렵고 수익성이 떨어지나 다행히 지금 이 순간도 수 많은 연구자들이 치료제 개발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유전성 희귀질환인 고셔병은 오래된 세포들을 없애는 특정 효소가 유전자 이상으로 결핍되고, 이로 인해 간과 비장 등에 오래된 세포가 과하게 축적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고셔병 역시 치료제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불치의 병이나 다름 없었으나, 다행히 수 많은 연구개발로 이제는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 됐다. 고셔병은 결핍된 효소를 대체해주는 효소대체요법이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해당 치료법을 통해 수십 년 동안 많은 환자가 효과적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나, 치료 편의성면에서는 한계점이 지적되어 왔다. 2주에 한 번씩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주사제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매번 약 2~3시간 동안 약을 투여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는 환자들은 업무에 영향을 미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으며, 치료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방 거주 환자들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도시의 대형 병원으로 치료원정을 떠나야 했다. 특히 고셔병은 유전 질환의 특성상 보호자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환자 스스로는 물론 가족들까지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같은 주사형 치료제를 개선해 개발된 것이 ‘경구형 고셔병 치료제’이다. 기존 치료제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 개발 끝에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경구형 고셔병 치료제는 환자가 집에서도 쉽게 복용할 수 있는 알약 형태의 치료제로, 합성 효소를 억제해 분해해야 하는 기질의 양을 미리 줄여주는 기질감소치료제이다. 기존 주사형 치료제는 치료를 위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야 했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치료를 위해서 바쳐야 했다. 반면에 경구용 고셔병 치료제는 환자들에게 학업이나 직장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성취감과 경제적 욕구를 해소하는 등 건강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일상의 삶을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구형 고셔병 치료제가 지난 2015년 허가를 받아 국내에 출시됐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건강보험급여를 적용 받지 못해 환자들의 치료 선택권에 제한이 있다. 치료제가 있어도 비용 문제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의사 입장에서도 절망스러운데 환자 입장에서는 어떠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희귀질환은 다른 질환보다 그 고통과 부담이 극심하다. 병을 진단받기까지 수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진단을 받아도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017년 세계 희귀질환의 날을 맞아 고셔병 등 희귀질환자들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치료 선택권이 향상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본 칼럼은 외부필진에 의해 작성된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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