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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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색종이로 구름 타고 승천하는 선녀를 오려 붙인 꽃 상여는 조잡하지만 화려했다. 막 들일 하다가 손을 놓고 나온 차림의 초상계원 13명이 상여를 메고 상여소리의 후렴을 받는다. 징 잘치고 판소리 잘하는 마을 한량 강씨아저씨가 상여소리를 메긴다.
어제 오늘 성튼 몸이 저승길이 웬 말이냐어허 어허
저승 길이 머다더니 대문밖이 저승일세 어허 어허
『아이구 아버지,불쌍한우리 아버지! 내 동생들 불쌍해서 어뜩허나 아이고 아이고 우리 아버지이…』
상여 한 귀퉁이를 잡고 따라가며 오열하는 큰딸의 넋두리는 남도 특유의 육자배기 가락이어서 상여소리와 구성지게 어울린다.
지팡이를 짚고 베옷을 걸친 큰아들은 그런 누이를 보며 묵묵히 걷는데 슬픔을 누르는 모습이 의젓하다. 깨끗한 소복에 하얀 장갑까지 낀 아주머니 25명이 상여에 늘어뜨린 다리 천을 쥐고양편으로 길게 갈라서서 춤을 추고 있다. 소박한 징· 장구 장단에 맞추어 다리 천을 흔들며 추는 이 춤은 아무쪼록 망인을 극락으로 천도하기 위한 동네 아낙네들의 정성이다.
바로 엊그제, 64호중 3집을 빼고 모두가 김해김씨 집안인 진도의 작은 동족마을의 상여나가는 모습이다. 마을어른의 한 분이었던 김씨 아저씨가 오랜 지병 끝에 환갑을 넘기고 돌아가셨으니 호상인 셈이다.
아들·딸·사위뿐 아니라 모든 친척들이 모여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씻김굿을 했다. 당골무당이 고풀이로 한을 풀고, 쑥물 향물로 깨끗이 씻겨 길 닦음으로 저승가는 길을 닦아주어 자유로와진 망인이 이제 정든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마당인 것이다.
9월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널찍한 마을회관 앞마당은 늙은이·젊은이·남자·여자·강아지까지 2백여명이 모여들어 부산하다. 통틀어서 2백52명이 살고 있으니 젖먹이 손도 아쉽다는 이바쁜 철에 마을 전체가 어젯밤부터 하루 해를 다바쳐 김씨 아저씨를 전송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친족 대표, 친구들, 부녀회원, 망인 부인의 동감계원, 그리고 우연히 서울서 진도민속조사를 갔다가 망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게 된 우리들도 술한잔을 부어 명복을 빈다.
살아 생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장의자체가 인스턴트화 돼가는 오늘 그의 죽음의 의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최대한 존중된 것이어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니, 초상계·위친게·동갑계·부인회등 다양한 협동조직을 통해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수 있도록 탄탄하게 배려해온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 때문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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