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하는 대학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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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활동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도서관시설, 교수연구비등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선진국의 대학수준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뒤진데다 졸업정원제 실시로 학생수가 급격히 늘고 만성적 학원소요로 연구분위기가 크게 해이된 것등 그동안의 대학사정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30일 발표한 「대학백서」 에 의하면 교수들의 연구논문 발표량은 85년까지는 꾸준히 늘었으나 86년 들어 전년대비 13·2% 줄었고, 외국 정기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85년의 34건이 86년엔 17건으로, 그리고 연구저서도 85년 3백52권이 86년 2백57권으로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학문연구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 서울대학교가 이정도라면 다른 대학의 경우는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앞서 지적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수들이 꾸준히 연구활동을 펴왔다는 점은 오히려 평가되어 마땅할 것도 같다.
대학의 연구기능이 학생들에 대한 교육기능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학의 교육기능은 우수한 교수의 확보와 이들의 열의에 따라 충족될 수 있지만 연구기능의 활성화는 교수자신의 남다른 사명감외에 재정적, 제도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우기 갈수록 치열해질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두개의 대학은 연구기능이건, 교육기능이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곳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의 한결같은 소망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학의 수준이나 교육내용은 국제적인 비교를 통해서라야만 그 우열이 판가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가 일찌기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발전방향을 잡은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학문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론과 기술을 개발, 교육의 소재를 널리 공급하고 그동안 주로 수입에 의존해 온 교수요원을 국내에서 양성한다는 두가지 목적만 갖고도「대학원대학」 의 필요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두말할것도 없이 대학원 대학은 교육기능보다 연구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기본여건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행정체제의 정비, 확충과 운영체제의 개선과 함께 연구인력의 강화, 연구소의 기능강화, 합리적인 연구경비의 지원등이 뒤따라야 한다.
민주화란 시대적 명제에 정부와 집권당이 동의함으로써 대학가의 분위기도 한결 달라졌다. 최루탄가스를 마시지 않고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된 셈이다.
사사건건 간섭만 일삼던 정부의 대학정책도 자율화로 바뀌었다. 이런 전환기일수록 각 대학은 대학의 정상적 기능회복에 각별한 자구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어느 대학의 연구수준을 선진국의 일류대학 비슷하게 끌어올리는데는 막대한 재정부담이 있어야하고 상당한 시일도 소요된다. 그러나 그에 앞서 각대학이 학내의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성취하기위한 경쟁적 풍토부터 조성해 나가야한다. 연구의 질과 내용을 향상시키려는 교수들 자신의 뼈를 깎는 노력이 바로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들 수 있는 기본 조건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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