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약속 안지키는 정치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설마하던 일이 끝내 일어나고 말았다. 29일 있은 두 김씨간의 담판이 결렬되면서 야당의 대통령후보 단일화는 일단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후보등록 직전에도 단일화는 이루어질 수 있고 후보등록후 본격 선거전을 벌이다가도 한쪽이 도중하차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다만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갈수록 치열해질 경쟁의 열도, 여기에다 가속이 붙을 감정의 격화를 생각하면 양측은 이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만 것 같다.
솔직이 말해 지금의 국민감정으로는 단일화담판의 결렬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 왈가왈부할 흥미조차 들지 않는다. 그 때문에 표가 우수수 떨어져도 자업자득이고, 누가 반사적인 이득을 보아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느낌마저 든다.
그동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입이 아프도록 강조해온 장본인은 바로 두 김씨 자신이었다. 마음을 비웠다느니, 민주화만 되면 대통령출마를 않겠다느니 다짐해온 이들인데 마침내 대권이 눈앞에 다가오니까 마음이 변했다는 말인가.
『국민에게 염려를 끼치지는 않겠다』 『30일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단일화를 성취시키겠다』고 다짐한 것은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민주화까지는 물론 민주화가 된 후에도 두 사람의 협력관계는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을 한 것도 역시 그들 자신이었다.
국민들은 그동안 이런 말들을 귀가 뚫어지게 들어와 딸딸 욀 정도가 되었다. 몇해전의 일도 아니고 모두가 엊그제 들어온 얘기들이다.
그러나 오늘의 결과는 두 김씨중 한사람은 자기가 나서는 것이 순리라고 했고, 다른 한사람은 국민 여망을 저버릴 수 없다고 했다.
유권자가 2천5백만명이 넘으니 누가 나서도 많든 적든 지지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만을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입을 모아 단일화에 합의를 못해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이지 정치인들이 편리할때 써먹는 볼모는 아닌 것이다.
앞으로 두 김씨간에 벌어질 경쟁은 볼만하기보다는 추할 것 같다. 분당의 갈림길에서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고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골몰할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는 않다. 우리는 누가 출마하고, 안하고의 차원을 떠나 우선 국민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사항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넘어가느냐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된다. 민주화는 정치인들에게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자유까지 보장해주는 제도는 아니다. 도리어 그런 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제 한가닥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은 분열로만 치닫는 야당진영을 재접합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력타결이 사실상 무망한 상태일수록 민주당내 소장파나 민추협등 재야단체의 반발, 여론의 압력에 가냘프나마 기대가 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러한 외압이 아니라 당사자들 스스로가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단일화를 이룩하는 길이다. 국민의 지지는 두 김씨가 단일화에 합의할때라야 확보되는 것이지 갈라서서 서로 삿대질을 하는한 갈수록 떨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두 김씨는 물론 측근들도 똑똑히 알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