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가는길오는길] 둥글둥글 살진 속살…한결같은 길동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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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호도과자 왔습니다. 선물용으로 좋은 호도오~과자." 객실을 오가는 홍익회 판매원의 목소리에 옆자리 꼬마가 졸린 눈을 비빈다. '호두과자'가 바른 표기이지만, 노랫가락처럼 구수한 호객에는 '호도오~과자'가 어울린다. 기차에 오르는 승객들 손에도 호두가 그려진 종이상자가 하나씩 들려 있다. 엄마를 졸라 과자봉지를 손에 넣은 아이는 마냥 신이 난다. 하얀 습자지를 금세 벗겨내고 노랗고 동그란 호두과자를 입 안에 넣는다. 천안역을 지날 때면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와 함께 보게 되는 기차 안 풍경.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차 여행의 간식거리'하면 호두과자가 먼저 떠오른다. 어디 기차에서 뿐일까. 고속도로 휴게실, 막히는 도로 한복판에서도 호두과자는 지루함을 달래주는 길동무다. 1934년 처음으로 호두과자를 선보인 원조집 '천안 학화호도과자'에서 따끈한 과자 속에 담긴 70여 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3대를 이어온 호두과자

'호두과자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학화호도과자 본점은 천안역 인근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70여 년 전 문을 열었던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 간판에 창업주인 심복순(92) 할머니의 사진이 붙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할머니는 남편 조귀금(1988년 작고) 할아버지와 함께 1934년 호두과자를 처음 만들어 낸 장본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운터에 앉아 가게를 지켰지만 최근 건강이 악화돼 가게 운영은 조카인 심성현씨가 맡고 있다. 천안 고속버스터미널과 천안소방서 인근에 있는 분점 두 군데는 할머니의 두 아들과 손자들이 각각 운영하고 있다. 3대를 이어 호두과자를 만들고 있는 셈.

열아홉 살에 시집온 할머니는 일본에서 제빵기술을 배워온 남편에게 "인근 광덕의 호두가 유명하니, 그걸로 과자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고심 끝에 완성된 과자는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돈으로 2전 하던 호두과자를 사려고 손님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섰다. 해방 전 천안에 머물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일부러 사람을 보내 사오게 할 정도였단다.

기차여행이 보편화하고, 홍익회의 전신인 강생회에 납품하게 되면서부터 호두과자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당연히 비슷하게 과자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수십 곳씩 생겨났다. 이제는 천안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가장 흔한 길거리 간식거리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본점까지 찾아와 과자를 사 가는 수십 년 된 단골이 많다.

나란히 가게에 들어선 최순덕(53).김이진(27)씨 모녀는 "너무 달지 않은 팥앙금과 고소한 빵 맛이 여기만한 데가 없다"고 칭찬을 한다. 맛은 물론, 과자를 싼 포장지도 옛날 그대로여서 추억이 담긴 선물로도 그만이란다. 본점에서만 하루 200~300만원어치가 판매된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천안역을 지난다면 잠시 들러 보면 어떨까. 카운터 옆쪽으로 조리실이 붙어 있어 호두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구경할 수 있다. 천안역 광장에서 아산 방향으로 30m, 역 앞에서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041-551-3370. 홈페이지(http://www.hodoo.co.kr/)에서 과자를 주문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가격 34개 5000원, 68개 1만원, 137개 2만원.

◆ '원조'의 맛내기 비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반죽. 호두과자를 만드는 밀가루는 물 대신 독특한 시럽에 반죽을 한다. 먼저 묽은 우유에 계란과 설탕을 넣고 물을 조금 섞어 농도를 맞춘다. 이것을 믹서에 갈아 낸 다음 밀가루를 넣어 반죽한다. 그런 다음 잠시 숙성 과정을 거치면 과자 반죽이 완성된다. 과자 소로 쓰이는 흰 팥은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물에 가라앉힌다. 팥독을 씻어내며 가라앉힌 앙금에 물엿처럼 녹인 설탕을 넣고 비벼서 한번 쪄낸다. 팥소의 물기를 적당히 빼준 다음 반죽과 함께 불에 굽는다.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호두는 한 알을 8쪽으로 나누어 과자 위에 한 조각씩 얹는다. 다 구워진 다음 과자 표면으로 호두 조각이 살짝 내비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 감미료나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순도가 높아 쉽게 상하지 않는단다. 1주일에서 10일 정도는 상온에 두었다 먹어도 된다. 과자가 굳어 딱딱해지면 우유에 살짝 불려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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