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靑, CJ·롯데는 친노 대기업이라고 분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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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CJ 등 일부 대기업을 '좌파 성향'이라며 지원에 불이익을 주려던 정황이 10일 검찰에 의해 드러났다. 청와대가 CJ그룹과 롯데그룹을 친노(親盧·친노무현)계열 대기업으로 분류해 투자 관련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던 것도 확인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7일 구속기소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 7명에 대한 공소장(9쪽)에 “최서원(최순실)은 평소 이념적인 부분에서 진보성향의 인물이나 현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기피했다. 특히 CJ그룹에서 제작한 영화나 드라마를 좌파적 성향으로 치부하며 힐난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공소장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CJ그룹에서 하는 영화 및 방송 사업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뜻을 CJ그룹 관계자에게 피력하였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공소장에는 당시 박준우 대통령 정무수석과 신동철 소통비서관 등이 “친노 계열 대기업(CJ·롯데)이 문화·영화 분야 모태펀드 운용을 독식하고 있다. 모태펀드 운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벤처투자 임원 교체를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문제 단체에 대한 지원을 관행으로 여기며 개선 의지가 부족한 문화체육부 장관과 차관의 경질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로 작성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2014년 4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로 '민간단체 보조금 태스크포스(TF)를 만든 뒤, 활동 경과를 종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가 관련 대기업에 대한 불편함을 오랫동안 가져왔다는 근거가 검찰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9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검찰은 공소장에 명시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지난 2013년 8월 비서실장 주재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 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며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2013년 9월 메가박스에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되자 김 전 비서실장이 "종북세력이 의도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와 펀드 제공자는 용서가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한편 이 공소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를 주도한 공범으로 적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김상률 전 수석의 정부부처 인사 불법 개입 혐의에 대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순실씨, 대통령 등과 순차공모해 국가 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해서는 안됨에 불구하고 대통령 및 문체부 장관, 교문수석 등의 직권을 남용해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노태강 전 국장으로 하여금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했다”고 적었다. 또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에 대한 혐의 서술에서도 “김종덕 전 장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대통령, 최순실 등과 순차 공모해 직권을 남용하고 예술위·영진위 등 소속 임직원들로 하여금 심의위원 선임, 문예기금 지원 심의 등에 부당하게 개입해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명시했다. 박 대통령을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실, 교문수석실 등과 함께 문화·예술계 이른바 '블랙리스트' 압력과 관련한 사실상 피의자로 명시한 셈이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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