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첫 일시매매 정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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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코스닥 지수가 63.98포인트 급락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서킷브레이커(일시 매매정지)가 발동된 23일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하염없이 추락하는 주가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산이 높았으니 골도 깊은 것이다."

코스닥 지수가 크게 급락한 23일 '블랙먼데이'를 지켜본 증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날 급락은 코스닥 지수가 지난해 전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던 '대호황'의 후유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상승세를 이끌던 기관들의 매수세가 매도로 급반전했고 덩달아 각종 '테마'조차 종적을 감춘 것도 한몫했다. 가뜩이나 꽁꽁 얼어붙은 투자심리 속에서 불안하게 움직이던 시장이 고유가와 환율 급락 등 악재가 잇따르자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코스닥 시장의 조정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당혹감에 빠진 투자자들=중소형 테마주는 물론 대형 우량주까지 모두 급락하자 고객은 물론 증권사 직원들도 넋을 잃었다. 교보증권 부평지점 김문기 차장은 "지난주 첫 폭락 때는 예상됐던 조정이라며 여유를 보이던 고객들도 한때 600선이 깨지자 투매에 가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박문광 영등포지점장은 "고객들이 모두 망연자실한 상황"이라며 "코스피와의 격차가 벌어지자 많은 투자자가 '뭔가 알려지지 않은 악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 할 정도"라고 말했다.

◆ 내우외환에 몰린 코스닥=최근 증시 하락은 미국 경기의 둔화 움직임에 따른 전 세계적인 IT주 약세와 유가 급등 등 '외환'과 환율 급락.주식 차익 과세설 등 '내우'에 영향을 받았다. 코스피 지수는 물론 일본.대만 등 주요국 증시도 23일 약세를 보였지만 유난히 코스닥의 하락이 두드러졌다.

대신증권 최재식 애널리스트는 "코스닥 시장은 거래소와 달리 시장을 받쳐주는 대형 우량종목이 적고 비중도 낮다"며 "이는 시장이 개인들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변동성이 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말 이후 올 초까지 워낙 많이 올랐고 ▶개인 비중이 93%에 달해 1999년 코스닥 거품 수준에 근접했으며 ▶전반적으로 코스피 시장에 비해 주가수익비율이 높고 ▶최근 미국 증시의 영향 등으로 약세인 정보기술(IT)주의 비중이 60%에 달할 만큼 높은 점 등을 코스닥 약세의 원인으로 봤다.

메리츠증권 서정광 투자전략팀장은 "코스닥 시장은 개인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선물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프로그램 매매 등도 활발하지 않다"며 "기관 중심의 프로그램 매매는 코스피 시장에서 급등락을 방어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데 코스닥 시장에는 이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 조정 상당 기간 이어질 듯=최근의 급등락에는 기관들의 단기 투자 행태도 한몫한 것으로 지적됐다.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은 23일 사내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최근의 시장 하락은 구조적 변화라기보다 일부 기관의 단기적인 운용 행태와 미수금을 예탁금의 20%까지 늘린 증권업계의 고질적 단기 업적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 이윤학 연구위원도 코스닥 시장의 선순환을 이끄는 듯 보였던 기관 자금이 오히려 악영향을 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지난해 대거 몰려와 코스닥 상승을 주도했던 기관 자금이 최근 팔자로 돌아서면서 코스닥 시장에 충격이 됐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기 상승추세가 완전히 꺾이면서 당분간 코스닥 시장이 깊은 조정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코스닥 기업의 전반적인 실적과 투명성이 높아지는 등 질적인 개선 추세는 여전하기 때문에 조정을 거치면 회복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안혜리.이승녕.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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