使측, 왜 서둘러 수용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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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서둘러 노조안을 대부분 수용한 것을 놓고 재계에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그럴 바에야 왜 46일이나 끌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현대차 주변에서는 정부의 긴급조정권과 지루한 분규 소모전, 정몽헌 회장의 급서, 강성 노조의 효과적 전술, 내수.수출 차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가급적 빨리 해결하라'는 지시가 울산 현장에서 노조 측과 교섭 중이던 김동진 사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鄭회장은 동생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몽헌 회장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상중 노사 협상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회사 측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도 사실은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긴급조정을 하면 노동위가 중재안을 내놓게 되는데, 회사 측에 유리할 것이란 보장이 없는 데다 중재 성립까지 또다시 1주일 이상 걸리게 돼 하루에도 수백억원씩 생산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여기에 "긴급조정권 발동이 노조를 자극해 더 강경하게 나올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노조의 협상 전략이 사측을 앞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울산 현장에서는 노조가 분규가 길어질 것에 대비해 잔업거부 및 파업 강도를 조절하는 등 주도권을 쥐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다. 회사 측의 한 간부는 "40여일을 끌면서 생산 차질이 1조3천억원을 넘어설 동안 정부가 도와준 게 뭐냐"고 말했다.

내수.수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한계에 달했다'는 협력업체들의 호소가 쌓이는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는 더 버티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결과적으로 보면 현대차 혼자 살겠다고 노조에 항복한 꼴 아니냐", "이번 협상 결과가 다른 국내 기업들에 선례가 될까 걱정"이라는 등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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