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중소 부품업체 흑자도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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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요기업들의 잇단 휴업사태로 부품을 대는 중소기업들의 연쇄적인 흑자도산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울산의 경우 시전체에 심상치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자금흐름에 이상이 생기자 기업들의 정기예금 인출이 늘어나는가하면 근로자들도 재형저축을 해약하는 일까지 부쩍 늘고 있다.
이지역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호황을 누려온 자동차부품회사들이라 아직은 자력으로 버텨내고 있으나 이달말이 한계라는게 공통된 우려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그 실태를 알아본다.
모공장이 돌아가질 않으니 생산해봐야 쓸곳이 없어 수많은 중소납품업체들은 할수 없이 휴업하게된다.
현대자동차가 받을수 있는 물량이라야 7∼10일간 필요량의 재고 정도.
(주)우진은 월5억원어치의 플래스틱 부품을 현대자동차에 납품한다. 우진은 지난11일 이미 1주일분의 부품을 납품했다. 종업원은 2백50여명. 자체 노사분규는 없지만 모기업이 이런 상태라 함께 쉴 수밖에 없어 12일부터 기계에 기름을 치고 가동을 중지했다.
협신공업사는 한달에 버스부품 1억8천만원어치를 현대자동차에 납품해 왔다.
이 회사도 지난 11일 1주일치 부품을 납품한후 12일부터 1백명의 종업원중 20명 정도의 상근직원만 출근하고 나머지 일용생산직은 휴무상태다.
덕양산업은 규모가 상당히 큰 부품업체다. 종업원이 6백50명정도 되고 계기판등 부품을 한달에 26억∼27억원어치씩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는 문제가 상당히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덕양산업은 노사분규도 겪었다. 지난 10일 분규가 발생해 노사간에 합의를 보고 14일부터 조업을 재개했다.
어렵게 타결을 봐 작업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덕양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럭키울산공장이 지난 5일부터 농성에 들어간후 아직껏 결말이 나지않고 있어 원자재 조달이 제대로 안되는 상태다.
현대자동차측으로부터 10일분의 물건을 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원자재조달 문제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현대자동차측은 휴업이 장기화되면서 부품공급업체들에 일단 7∼10일분의 재고까지는 납품을 받고 이대금은 회사의 어음지급일(매주 화요일)인 18일에 지불하겠다고 통보했다.
아직 부도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자금사정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중소기업은행 울산지점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어음발행을 중단한 12일이후 하루 교환액은 62억∼63억원에서 55억원 정도로 줄었다.
이 지점의 정기예금은 7월말 13억1천4백만원에서 이달 14일 현재 7억1천만원으로 절반 정도 격감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그동안 저축했던 돈을 찾아 현재의 자금압박을 타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사분규가 보다 심각한 상태로 전개되고 있는 회사라든지, 모기업 자체가 불황등으로 사정이 어려운 경우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원진기계(대표 남윤식)는 창원 기아기공에 연 5억원어치의 기계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7월30일 납품대금을 90일짜리 어음으로 받았고 그후 지난 6일까지 납품해왔는데 기아기공이 농성사태에 휘말리면서 그후론 납품을 못하고 있다.
이같은 사태가 장기화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분규사태가 이달을 넘길 경우 수많은 관계회사들이 흑자도산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대자동차라해도 자체가동에 관계없이 계속 납품을 받고 90일짜리라도 어음을 끊어줄 여력이 있을리 없다. 그런 사태가 온다면 상황은 예측불허의 파국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현재의 노사분규가 서로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극복되기만 한다면 노사관계의 올바른 정립은 물론 산업구조의 자연스런 개편에도 일조를 할것임에 틀림없다.
모기업과 하청기업의 관계에서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냈다는 결속감이 앞으로의 협력관계를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도 현재의 사태가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구조내에서 연쇄폭발의 상태로 번지지않도록 서로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울산=이장규·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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