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의과학읽기] 쉽게 읽는 토머스 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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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많이 팔리지만 제대로 읽히지 않는 과학책 순위를 매긴다면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두 권 모두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내용 때문에 처음 몇 장을 넘기다가 서가에 꽂혀 먼지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특히 '과학혁명의 구조'는 문.이과를 막론하고 대학의 교양 필독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지만 '패러다임' '정상과학' '공약불가능성' 같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중요한 개념을 제기하고 있고, 해당 분야 연구자 사이에서도 그 의미를 둘러싸고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미국의 사회학자 웨슬리 샤록과 영국의 철학자 루퍼트 리드가 쓴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은 제대로 된 토머스 쿤 연구서다. 동시에 이 책은 자연스레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한 폭넓은 해설서 구실도 톡톡히 해낸다. 쿤이 평생 낸 책이 고작 네 권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적은 수의 책으로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 쿤은 학자로서 더없이 부러운 존재며, 동시에 무척 환경친화적인 학자인 셈이다.

이 책은 서론에서 쿤을 둘러싸고 빚어진 오해와 전설을 해부한다.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과학지식의 누적성을 거부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과학혁명으로 과학의 변화를 설명한 쿤의 견해를 과학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고, 반대로 행동주의자들은 쿤을 혁명가로 오도했다.

그러나 두 가지 해석 모두 정작 쿤과 무관하다. 그는 역사적 접근을 통해 과학이라는 활동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과학의 변화가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한 것이며, 그가 거부한 것은 과학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그를 비판한 와인버그보다도)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1부에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비롯한 그의 저서들로 구현된 그의 사상체계의 주된 골조를 제시하고, 2부에서 핵심 쟁점들을 놀랄 만큼 정확하고 풍부하게 분석한다.

결론부의 제목이 '해소되지 않은 긴장'이듯 쿤을 둘러싼 논쟁이 아직도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패러다임 전환기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최근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큰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서 불현듯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든다면 쿤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이다.

김동광 (과학 저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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