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발」묶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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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운전사들의 집단 연휴사태가 전국 11개 도시와 2개 군으로 확산, 도시교통이 일부 또는 전면 마비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4개 시내버스 회사 운전사들이 파업, 농성에 들어가 10개 노선 2백30여대의 버스운행이 감시 중단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어디서 얼마나 많은 버스와 택시들이 연휴에 들어가고 시민들의 발이 묶일지 불안하다.
딥단 파업사태가 4일째 계속되고 있는 광주에서는 시가지의 교통이 온통 마비돼 심지어 학교버스까지 동원하는 등 불편과 혼란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서울시내 버스조합이 총파업을 위협하고 나섬으로써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대중교통수단인 시내버스가 일시에 전면 연휴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상상만해도 아찔할 뿐이다.
서울에 지하철이 있고 자가용승용차가 길을 메우다 시피하고 있지만 교통수단의 대종은 역시 시내버스다. 서울시외 출입 통행량을 포함한 서울의 하루 교통량은 l천5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의 절반을 버스가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만약의 사태는 곧 최악의 사태를 의미한다.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서도, 일어날수도 없는 일이다.
다른 사업장의 파업은 생산이 중단되고 수출량이 줄어들고 기업과 국가적 손실을 보게되지만 교통파업은 그 정도에 그치질 않는다. 일반 시민들의 불평, 출퇴근 러시아워의 교통전쟁, 직장인들의 지각과 결근사태로 도시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각 기업과 사업장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된다.
따라서 교통파업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걸 운전사들은 물론 운수업자들이 깊이 인식해 사태수습에 다같이 노력해야겠다.
농성파업에 들어간 운전사들이 내건 요구조건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하나같은 공통점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어용노조 퇴진이다.
운전사들의 이러한 요구조건은 이번 전국적인 노사분규 훨씬 이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돼온 해묵은 쟁점들이다. 얼마전 서울에서도 택시운전사들이 사납금 폐지와 완전 월급제를 주장하며 경적시위와 도로점거 농성을 벌였듯이 운수업계의 노사분규는 고질처럼 있어 왔다.
운전사들의 요구사항이 너무 많고 요구조건들이 당장 들어주기엔 벅찬 무리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버스업계는 작년 기름값도 인하되고 안내양마저 없어져 전에 없이 호황을 누렸는데도 올해 임금인상률이 고작 3.5%에 그쳤다는 운전사들의 주장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대중 수송수단인 시내버스가 다른 업종과 달리 높은 공공성을 띠었고 노조 등 그동안 운영상의 병폐가 누적되어온 점에 비추어 차제에 합리적 임금조정과 아울러 업계의 체질 개선도 어차피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의 지적처럼 연휴로 인한 충격과 파급이 얼마나 큰가를 깊이 인식해 양보와 자제의 슬기를 발휘하길 바란다. 그것은「핸들」은 결코 놓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가는 길이다.
시민의 발을 묶는 상황이 지속되면 될수록 운전사들의 요구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끝내는 등을 돌리게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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