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성지 순례 또 345명 압사 … 왜 매년 반복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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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중인 무슬림들이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외곽의 미나 평원에서 열린 '악마의 기둥' 돌 던지기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이 행사는 아브라함이 신의 소명에 따라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유혹했다는 악마를 쫓는 의식이다. [미나 평원 AFP=연합뉴스]

이슬람의 연례 성지순례(하지)가 올해 또다시 대형 압사 사고로 피멍이 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인근 미나평원에서 12일 '악마의 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을 치르던 중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최소 345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 부상했다고 사우디 보건부가 이날 밝혔다. 사우디 정부는 사고 방지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종교적 열정에 빠진 채 몰려드는 순례자 행렬을 막을 수 없었다.

◆ 사고 원인=이날 참사는 여행용 가방 때문이었다. 지나던 버스 지붕에서 떨어진 짐가방에 순례자들이 걸려 차례로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악마의기둥에 돌을 던지기 위해 순례자들이 계속 밀려오면서 사상자가 급증했다.

알자지라 등 TV 방송들은 사고 지점 인근의 도로에 방치된 시신 여러 구의 모습을 방영했다. 수십 구의 시신이 냉동트럭에 실려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사고 직후 긴급 구조작업에 나섰던 사우디 경찰과 보건 당국은 "투석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순례자들이 계속 밀려드는 바람에 효과적인 구조작업을 펴지 못했다"고 밝혔다. 목격자들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지만 수십 만 인파가 계속 앞으로 밀려왔다"고 전했다.

◆ 당혹해 하는 사우디=닷새 순례기간의 마지막 날 발생한 이번 참사로 사우디 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관계 당국은 압사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대비해왔다. 사우디 당국은 2004년 사고를 계기로 약 3000만 달러를 들여 인도교에 비상통로를 더 많이 만드는 한편 미나 계곡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3개의 돌기둥을 모두 돌벽으로 바꾸어 과녁을 크게 만들고, 폐쇄회로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해 인파 이동을 감시했다. 또 수만 명의 보안요원을 동원, 밀려드는 순례자를 분산시키기도 했다.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새벽기도 전부터 투석 의식을 진행해도 좋다는 파트와(이슬람법 해석)를 발표하기도 했다.

◆ 종교적 열정="종교적 카타르시스에 빠져 안전의식이 사라졌다"고 알아라비야 방송은 13일 사고 원인을 지적했다.

4~5일 간의 기도와 명상, 단식으로 지친 상태에서 종교적 열정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방송은 설명했다. 투석 의식은 매년 수십 명이 사망하는 압사 사고를 불러왔다. 1990년에는 1426명이, 2004년엔 251명이 목숨을 잃었다.

성지순례의 대미를 장식하는 돌던지기 때 순례자들의 열정은 최고조에 달한다. 악마의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은 아브라함이 신의 소명에 따라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유혹했다는 악마를 쫓는 의식이다. 순례자들은 3개의 돌기둥을 향해 무즈달리파 돌산에서 주워온 49~70개의 작은 돌을 7개씩 던지며 "악마여 물러가라"고 외친다. '악마의 기둥 돌던지기' 의식이 벌어지는 미나 평원은 250만 명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협소하다. 사우디 당국은 이를 고려해 이슬람권 국가마다 인구의 0.1%만 순례자 수로 할당하고 있지만 밀입국자가 많아 통제가 안 되고 있다.

여기에다 순례 중의 사망은 천국으로 가는 축복이라는 믿음도 안전의식을 약화시킨다. 이슬람이 발원한 알라의 땅인 메카에서 예언자들이 앞서 간 길을 순례하다 죽는 것은 무슬림에게 더없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노인 순례객 중 메카 순례가 인생의 마지막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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