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폭탄주 먹고 몸 버려 쉬도록 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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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설이 나돈 장성택(사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거취에 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6월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일행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다.

12일 정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장 부부장을 먼저 화제에 올렸다. 김 위원장은 "장 부장(부부장)이 남조선에서 폭탄주를 너무 먹고 몸을 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쉬도록 했다"고 말했다.

장 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매제(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 부장의 남편)다. 핵심 실세였던 장 부부장은 2003년 7월 이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권력다툼에서 밀려 숙청됐다거나, 김 위원장 전용시설을 무단사용하다 근신조치됐다는 등의 설이 난무했다. 조직지도부 간부 아들의 호화 결혼식이 문제됐다거나 신변 이상설까지 나왔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남한 방문은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으로 왔을 때의 일을 말한다. 장 부부장은 9일간 서울과 부산.포항 등에서 머물렀다. 한 당국자는 "장 부부장이 발렌타인 30년산으로 폭탄주를 거의 매일 마시고 숙소를 벗어나 유흥주점을 찾는 등 술을 즐긴 건 사실"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부 당국은 김 위원장의 언급이 숙청설을 해명하려는 뜻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또 '남조선에서 폭탄주를 너무 마셨다'는 대목은 장 부부장이 남한 방문과 그 이후 지나치게 방만한 생활을 한 게 문제가 됐음을 암시한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남측 손님 앞에서 장 부부장 얘기를 자연스레 꺼낸 점으로 미뤄볼 때 일정 기간 공백기를 거치면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한동안 쉬게 했다'고 말한 대목도 이를 암시한다. 노동당뿐 아니라 권력 핵심의 인사.조직 문제를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데다 각별하게 챙기는 여동생의 남편이란 점에서다.

김경희는 동갑(1946년생)인 장성택과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이다. 두 사람 사이를 반대한 김일성 주석이 장성택을 강원도 원산농과대학으로 쫓아 보냈으나 시도 때도 없이 원산으로 달려가는 김경희의 열정 때문에 모스크바 동반 유학과 결혼을 승낙했다는 러브 스토리는 북한 권력층에 널리 알려졌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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