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오토바이 타고 사이클경기 심판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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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파일럿 유니폼에 사우디아라비아식 콧수염을 기른 사이클 심판 위경용(62)씨는 경광등 10여개가 달린 모터사이클을 타고 사이클 코스를 누빈다.

그가 방문했던 각국 국기 등 큼지막한 문장(紋章)이 10여개 붙어있는 옷을 입고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에서는 영화 '이지 라이더'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허리와 어깨에 걸친 군용 탄띠에는 3개국 군대의 탄창집이 줄줄이 걸려 있다. 날씨에 따라 바꿔 쓸 수 있는 선글라스 세개와 무전기.호루라기 등 소품들이 탄창집에서 끝없이 나온다. 섭씨 34도의 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魏씨는 오히려 "이번 대회를 위해 18만원을 들여 새로 롱부츠를 맞췄다"고 자랑했다.

魏씨는 5일 창원에서 개막한 아시아사이클선수권대회 선수 선도 심판을 맡고 있다. 선수 앞에서 길을 인도하면서 중간에서 반칙을 잡아내는 역할이다. 魏씨는 "심판은 눈에 잘 띄어야 한다. 사이클 선수들의 유니폼이 화려하니 나도 화려해야 한다"며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사이드카 경찰들이 '형님'하고 인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클 선수 출신이다. 1959년부터 10년 동안 사이클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64년엔 도쿄(東京)올림픽에도 참가했다. 대표팀 코치 등을 하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치른 뒤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다.

아랍종합선수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금메달을 안기면서 그곳에서도 인기스타였다. 93년 국내로 돌아와서는 경기도 양평 남이섬에서 콩나물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이클과 모터사이클은 버리지 않았다. 30년 동안 모터사이클로 사이클 선도 심판을 했고 매일 아침 한시간씩 사이클을 탄다. 사이클이나 오토바이 관련 액세서리를 보면 꼭 사고야 마는 성격에 부인도 이제 완전히 손을 들었다.

그는 5백50cc 혼다 오토바이도 갖고 있지만 사이클 선도 심판은 날렵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1백25cc 오토바이를 탄다. 오토바이 운반용으로 개조한 다마스 자동차 속에도 액세서리가 한가득 들어있다.

魏씨는 "후배들이 사이클 세계 최고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며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별난' 역할을 하며 후배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창원=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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