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강국 되려면 정부부터 혁신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4호 2 면

셀트리온이 지난 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바이오시밀러 약품인 ‘램시마’의 판매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8조원대 기술 수출에 이은 국내 제약업계의 쾌거다. 셀트리온은 램시마 한 품목으로 미국 시장에서 연 매출 2조원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는 신약을 베낀 복제약이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는 케미컬(화학) 성분의 복제약보다 만들기가 훨씬 어렵다. 실험실에서 원조 신약과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더라도 대규모 공장의 배양기에서 균일한 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EU 등에서 판매허가를 받아내려면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중국·인도 등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첨단 기술산업이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삼성도 석유화학업종을 접은 대신 바이오시밀러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바이오 제약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우선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EU·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브라질·러시아 등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소득 증가, 인구 노령화로 의약품 시장의 전망은 다른 어떤 업종보다 밝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연평균 7.8%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바이오 약품은 가격이 비싸다.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인 ‘휴미라’의 1회 주사 값은 400만원이나 한다. C형 간염 치료제인 ‘소발디’의 12주 치료프로그램 약값은 9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블록버스터 바이오 신약의 특허기간이 대부분 2020년까지 만료된다. 미국에서만 25조원 규모의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창출될 전망이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이유다.


어려운 여건에서 일부 국내 업체는 바이오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사노피에 5조원의 계약을 맺고 수출한 당뇨병 치료제도 바이오 신약이다. 1년에 네 번 식사를 하고도 생존하는 미국 독도마뱀의 혈당조절 호르몬을 응용해 월 1회 투약하면 되는 당뇨병 치료제를 만들었다.


한미약품 외에도 바이로메드·코오롱생명과학·제넥신 등이 국내외에서 바이오 신약의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모두 성공하지는 못하겠지만 일부는 한미약품·셀트리온 같은 ‘대박’을 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점 외에 바이오 제약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고용 효과가 크다는 점 때문이다. 정밀 제조공정은 물론 연구개발·임상실험 등에 의사·약사와 석·박사급 고급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미국 FDA에서 신약 허가를 받으려면 수십만 장의 실험보고서·자료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모두 사람의 손이 가야 하는,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의약계 인력의 질적 수준이 높은 한국에 딱 맞는 업종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오 제약을 한국의 새 성장동력으로 만들려면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일본은 바이오 산업을 키우기 위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었다. 바이오 의약품의 경우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실험 1상만 통과해도 판매 허가를 내주고 있다. 덕분에 일본의 바이오 의약 기업들은 신약의 개발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신약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다. 기업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실력도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문성 있는 인력을 확 늘려 허가심사 기간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연구개발 비용에 대해 과감하게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도 검토할 만하다. 얼마 안 되는 연구비를 지원해 놓고 정부가 간섭하는 것보다 기업들에 훨씬 도움을 줄 것이다. 약가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무조건 약값을 후려치는 분위기에선 기업들의 혁신을 유도하기 어렵다. 오리지널 신약이든, 개량 신약이든 노력의 대가를 적절히 보장해줘야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기술력이 뛰어난 바이오 기업들의 코스닥 상장도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허원 강원대 생물공학과 교수는 “이미 성장한 기업이 아니라 성장성 있는 기업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기술특례 코스닥 상장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바이오헬스 7대 강국’을 목표로 세제·금융·약가 제도 등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바이오 제약은 기업들만의 노력으로 융성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정부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바이오 제약 강국인 이스라엘·스위스 정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서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의 탄생을 꿈꾸는 것은 몽상(夢想)이다. 사막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길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이오 혁명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혁신하는 조직만이 바이오 혁명의 과실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