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일 산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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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31면

유럽 패션 브랜드들이 속속 한국에 눈을 돌리고 있다. 프랑스 샤넬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년 연속 패션쇼를 열었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를 라거펠트는 지난 수십년 동안 국제 패션시장을 주도해 왔다. 경험이 풍부한 그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도한다. 그래서 그가 무언가에 손을 대면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라거펠트가 서울에서 패션쇼를 한 데도 반드시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한국 시장의 규모가 커진 것을 언급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럭셔리시장 8위에 올랐다. 규모는 110억 유로에 달한다. 서울은 뉴욕·파리·런던·도쿄에 이어 80억 유로의 큰 럭셔리시장이다. 경제 성장으로 높아진 소득 수준 덕분에 명품을 사는 사람 수가 많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조사에 따르면 자기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큰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명품에 쓰는 소득의 비중이 더 크다. 한국에서 살아 본 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한국인의 명품에 대한 큰 관심에 놀란다.


둘째 이유는 한국소비자의 패션에 대한 감각이 세밀해지고 세련됐다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라인·칼라·셰이프를 추구한다. 그래서 세계 패션계에서 까다롭고 요구가 많은 소비자로 인정받고 있다. 요구가 강한 데다가 빨리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려면 한국에 꼭 있어야 한다. 한국에 없으면 새로 나온 경향을 놓치기 마련이고 한 번 놓치면 다시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셋째 이유는 한국인의 특별한 미학과 관련이 있다. ‘달’ 모양을 이룬 백자가 상징하듯이 한국의 미는 단순하고 신선하다. 어떤 사람 눈에는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현대적인 패션트렌드를 지켜보면 심플한 라인 그리고 신선한 실루엣이 기본이다. 그리고 특히 샤넬이 지속적으로 거의 100년 동안 보여 온 심플한 ‘파리지앵 시크(Parisian Chic)’는 한국인 미학과 상통한다.


넷째, 중국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서울에 쇼핑하러 오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외국 브랜드에 성장기회를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중국에는 한류 영향으로 한국 스타일을 따라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동남아시아에서도 한국 스타일을 선호한다. 한국이 샤넬 같은 외국 브랜드를 위해서 아시아시장을 여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유리한 입지를 잘 살린다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디자인·뷰티·스타일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이리나 코르군한국외국어대 러시아 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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