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 의혹도 남기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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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은 검찰의 범인축소 조작사건 수사가본격화되고 고위직 문책까지도 정치권에서 거론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은『사건 은폐, 조작에 간여한 사람이 누구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교도소에 수감된 관련경찰관 5명으로부터 조작과정과 경위등을 캐고 있다.
민정당도 당정회의를 갖고 정확한 진상규명으로 국민의 의문을 해소하는 일이 급선무고 조사결과에 따라 최상급자의 정치·도의적 문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데 의견을모았다.
한편 야당은 국회의 국조권 발동과 내각 총사퇴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재야및 종교단체들도 사건의 은폐조작은 박군 고문 치사사건 못지않은 중대사건으로서 진상조사에 공신력을 담보할수 있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실 박군 사건은 3명의 경찰관추가구속으로 끝난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21일 발표한 검찰의 사건진상도 사건의전모 아닌 그 일부가 드러난 것일뿐 의혹과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진상조사는 원점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털끝만한 의문이나 미흡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남아서는 이번 사대의 해결이나 진정은 커녕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을 잉태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따지고 보면 공권력이 애당초부터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국민을 바보처럼 우습게 여기고 진실을 은폐하러한데서 비극이 싹튼 것이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지, 누가 보아도 허점과 의심투성이 수사결과를「진상」이라고 발표하고 진실이라고 우겨댔다.
이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민심은 간단히 가라 앉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공권력이 콩을 보고 콩이라해도 못믿게끔 되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는 누구나 납득할수 있는 철두철미하고 공명정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
진상을 낱낱이 밝히려면 국회의 국조권은 발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솔직이 말해 정치권이 이 문제에 끼여들어 국민이 품고있는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줄것 같지는 않다.
여야가 서로 정략적인 차원에서 다룰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개개인이「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냉정한「제3사」로서의 구실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임시국회 소집문제만해도 민정당은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본회의는 고사하고 관계상임위의 소집마저 기피하는 인상이다.
더우기 박군 사건이 터진 직후의 임시국회가 여야의 정쟁에 휘말려 흐지부지 끝난 사실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국회는사건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은 커녕 인권특위의 구성마저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런 경과로보면 박군 사건의 은폐조작은 국회에도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위론으로서는 국회가 나서야 하지만 실제 무슨 성과가 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만큼 정치권이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뿐더러 검찰이 진상수사에 나섰다지만 범인 축소모의에 참석했다는 치안본부 간부 몇명 검거 정도로는 아무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조직체계와 보고체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민들이 그 어마어마한 사건을 조작, 은폐하는 은모에 경찰간부 몇명만으로 가능했으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몇몇 경찰관이 봉급을 털어 먼저 구속된 경찰관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월급을 꼬박꼬박 주어왔다는 사실도 상식으로 통할수 있겠는가.
이번 진상조사에서 석명히 밝혀야할 점은 크게 보아 세가지다.
첫째는 당시 치안본부장이 사건발생후 첫기자회견에서 수사관이『탕』치니 박군이『억』하며 죽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이번 사건조작 은폐의 첫시도이고 원초가 되는것으로 이 대목이 규명되지 않고서는 진상수사도 무의미 할것이다. 첫 조작 은폐는누구의 아이디어로 구상되었고, 이거짓 발표에 누가 참여하고, 어느 선까지 알고 있었는가부터 밝혀져야한다.
두번째는 경찰관 2명 구속과 관련, 수사관행에도 없는 비밀수사와 수사자료 비공개, 비공개 검증, 서둘러 시체를 화장한 부분등이다. 이건 누구의 지시와 모의로 진행되었는지 경의와 과정이 석연히 밝혀져야 한다.
세번째는 사건수사를 검찰이 하지않고 경찰에 떠맡긴 이유와 경위등 자초지종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진범이 따로 있다고 발표했을때 부인해오다 사흘만에 3명을 추가 구속한 경위가 낱낱이 규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진상조사는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객관성이 담보되는 대한변협이 떠맡아야 한다.
앞서 지적한것처럼 검찰은 어떻게보면 진상조사의 대상이다. 수사초기단계에서 부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선다는 것은 객관성과 공정성은 물론 신퇴성이 확보될것인가도 의문이다. 1차적 책임을 져야할 기관은 바로 검찰인 것이다.
다아는대로 은폐기도 사건으로 민정당은 곤감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어느 여당의원은『한번 맞을 매를두번 맞게했다』는 뜻의 말을 했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의「명예」를 의해서는 물론 이같은 여당의 근경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도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번으로 그칠 매를 세번, 네번맞는 결과가 빚어질지도 모른다.
수사당국의 잘못은 고스란히 여당의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생생하게 가르쳐주고 있지 않는가.
누구보다 여당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 소이인 것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건을 놓고 꽁무니나빼고 손가락질이나 하고 있을때는 아니다. 정부의 당당한 대처와 함께 국회도 빨리 열어 진상규명에 나서야만 격앙된 민심을 수습하고 상처도 빨리아물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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