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해결사 외환은 최승낙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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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뜻하지 않게 부채1조원규모의 범양상선 임시선장이 된 외환은행 최승낙이사는 앞일이 큰 적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23일 돌연 범양상선의 관리책임자로 발령받은 최이사는 온갖 상처투성이인 범양상선을 하루라도 빨리 정상궤도라는 목적지로 운행하기 위해 항로점검·엔진 점검등 산적된 일로 이날부터 밤샘작업에 들어갔다.
관리반 편성, 범양상선과의 관리약정체결, 인수·인계, 정상화계획 수립, 경영실태 파악등 할일은 태산같다.
그는 『우선 내부 경영안정을 이룩한뒤 실태를 파악,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겠다』며 그러려면 최소 3개월은 걸린다고 밝혔다.
정인용재무장관을 비롯, 그를 아는 주위의 사람들은 『그가 별문제 없이 일을 처리, 범양상선의 경영정상화를 이룩할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최이사는 기대를 받고있다.
그가 범양상선의 실질적인 사장으로 취임, 경영정상화란 짐을 짊어지게 된것은 그동안 경남기업·대한선주등 회생불능의 부실기업 처리과정에서 보여온 남다른 솜씨 때문이다. 부실기업정리 전문경영인으로 소위 해결사 (?) 노릇을 다시 한번 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이다.
부실기업과 그와의 인연은 패나 깊다. 69년 한국은행 과장시절 그는 청와대 부실기업정리대책반에 파견돼 부실기업문제를 다루면서부터 부실기업과 인연을 맺어놨다.
당시 팀장이던 장덕진씨(전농수산부장관), 그리고 그후 김용환씨 (전재무장관)밑에서 부실기업정리문제를 다뤘다.
이때 공무원 전향권유도 받았지만 이를 물리치고 외환은행으로 적을 옮겨 금융계에 돌아왔다.
그후 부실기업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된 것은 제세 도산때인 78년.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업무부장을 하고 있던 그에게 『남대문 지점장으로 나가 제세도산의 뒷마무리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입행 22년만에 첫 지점 근무를, 그것도 부실기업정리책임을 맡게된 것.
천성이 꼼꼼하고 남달리 머리회전이 빠른 그는 「제세」문제를 원만히 처리하는 한편 남대문지점을 수신고 1위점포로 키워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부실기업정리1호가 된 경남기업처리때도 그는 당시 정인용외환은행장밑에서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 대우에 넘기는 일을 수행했다.
인수회사가 은행의 실사결과를 못미더워하는 것을 보고 부실기업 실사사상 처음으로 공인회계사를 끌어들여 객관성을 유지토록 한것도 그였다. 그후 모든 실사에는 공인회계사가 참여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또 소위 악명 (?) 높은 시드 머니 제도도 그가 창안했다.
그는 부실기업정리라는 미개척지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좋든 나쁘든 선례를 만들어 나간 사람이란 평이다.
최이사는 외환은행이 관리하던 대한선주가 엄청난 부실의 심연에 빠져들자 이 회사의 부실을 정리하는 책임자 임무도 맡았었다.
경남기업 처리수완에 반한 정장관은 대한선주정리로 해운에 관한 노하우까지 얻은 그에게 범양상선을 맡기며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범양상선의 경영공백을 메우는데는 그 이상 갈 전문경영인이 없다』고 단언할 정도.
동안에 5척단구로 유약하게 보이지만 두주불사에 보스기질까지 갖춰 통솔력도 탁월하다는 평이다.
그는 『경남기업때는 멋 모르고 맡았지만 대한선주를 또 맡길때는 버럭 화를 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안나오더라』며 『몸무게가 또 몇킬로그램 줄게됐다』고 실소했다.
서울대영문과출신으로 최창낙동자부장관의 실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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