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통령의 "전권부여"가 뜻하는것|「개헌한판승부」노대표에 위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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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헌정국의 장래가 극히 혼미한 가운데 전두환대통렁이 25일밤 민정당간부들을 불러모아 놓고 민정당이 노태우대표를 중심으로 개헌과 통일을 주도하라고 말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기를 채1년도 안남긴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가 바로 후계자의 가시화를 의미하는것인지, 아니면 개헌정국 돌파를 위해 노대표에게 좀더「실세」와 「책임」을 강조한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대통령의 발언을 전한 이춘구사무총장이 『정국을 주도함에 있어 노대표에게 보다 많은 재량을 준것』이라고 풀이했고, 다수 참석자들이『노대표에게 마음을 열고 전권을 준것같다』는 감을 전한것을 보면 일단 노대표의 지위를 강력히 뒷받침한 것으로 볼수있다.
특히 대통령은 각종 민주화조치도 개헌타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노대표가 판단해 추진하라고 말해 개헌관철과 노대표에 대한 신임에 각별한 의지를 보였다.
사실 대통령이 단순히 개헌과 정국을 노대표에게 주도하라고 독려했다면 크게 놀랄일이 아닐수도 있다. 노대표는 이미 작년5월『대통령이 나에게 권한과 책임을 맡기셨다』며 내각제캠페인과 이미지 부각을 시도했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고 그후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누구보다 대통령의 통치권 누수와 후계자부각이라는 모순된 개념속에 고심해 왔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번 지시가 과거의 언질과 새삼 어떻게 다른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을수 없다.
물론 25일 대통령의 말을 직접 들은 사람중에는 『후계자의 가시화로 보는것은 성급하며 개헌정국 돌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한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견해도 많다.
또 이사무총장도 『대통령의 말씀은 민정당이 노대표를 중심으로 정국을 주도해달라는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차기집권후보자는 민주적으로 뽑아야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이 시기에 대통령이 노대표의 주도를 강조한것은 전보다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것이 중론이며 대통령의 의중과 노대표의 수용자세가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있다.
우선 대통령이 앞으로 노대표에게 얼마만큼의 권한과책임을 줄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닐수없다.
대통령은 기회있을때마다 정해진 임기를 하루 더도덜도 않겠으며 재임중에는 끝까지 전권을 행사할 것을 다짐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후보자는 개헌이 마무리된후 가급적 늦게 가시화하지 않겠느냐고 보는것이 정부·여당내의 한 흐름이기도 했다.
또 대통령은 개헌을 각 정파가 합의해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종 견지하면서 기회있을때마다 합의개헌을 독려해왔다.
그러나 실제 여야간의 개헌협상은 촌보의 진전이 없을뿐 아니라 점점 더 극한 대립의 양상을 보여왔다. 따라서 촉박한 시한과 문제의 난해성을 감안할때 더 이상 방치할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음직하고 노대표에 대한 강력한 뒷받침으로 교착상태의 타개를 추진하려는 의지가 아닌가 하는 해석이 나오는것이다.
민정당이 합의개헌을 부르짖으면서도 구체적인 노력을 보이지 못한것이 협상의 전권을 쥔 주도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대통령 스스로 노대표에게 힘과 책임을 부여해 한판 승부를 위임했다고도 할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노대표에게 재량을 준것은 더 적극적으로 개헌문제에 접근하고, 합의개헌이 성공해야지 정치적 입장이 확고해진다는「부담」을 동시에 준것으로 풀이될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개헌의 성사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과 노대표 사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국구도에 대한 깊은 얘기가 있었고 이번에 그 일단이 내비쳐졌다는 추측도 파다하다. 이런 추측과 관련해 노대표가 6월 방미계획을 은밀히 추진하고있는 점등으로 미뤄 대통령으로부터 뭔가「사전통보」를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확한 경위와 내막이야 어떻든 노대표는 이제 내각제개헌관철과 총선을 통한 민정당의 재집권이라는 당면과제에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다가가지 않을수 없는 처지에 섰다.
노대표의 정치입장도 이 짐의 처리여하에 달려있다고 보는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같은 과업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위해 노대표는 우선 내부적으로는 인사와 정책에 관한 응분의 권한을 확보해야하고 야당에 대해서는 실세로서 협상력을 인정받아야한다.
그런점에서 오는 4월말이나 5월초에 있을 국회직 및 당정개편때 노대표의 영향력이 어떤 모양으로 투영될지가 관심사며 정책집행에서 당주도의 강도가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노대표의「실세」와 대통령의「지원」이 순조롭게 조화를 이루면 개헌협상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수있다. 우선 개헌문제를 대통령과의 실세대화로 풀겠다는 두김씨의 태도가 바꿜 가능성을 주시할 필요가 있으며 노대표도 새로운 자세와 전략으로 대야협상에 나설것으로보인다.
그래서 대통령의 권한위임이 궁극적으로 후계자가시화 배려인지 여부를 떠나 노대표로서는 당장 개헌정국의 새로운 대응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노대표 자신은 실세를 앞세운 대야창구일원화를 보장받았다는 선에서 국민과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이 극심한 내분에 휩싸여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민정당이 개헌에 적극공세로 나오는것이 국민여론에 어떻게 비칠지도 민정당으로서는 계산하고 있는듯하다.
어쨌든 이 시기에 대통령이 노대표에게 정국주도권한을 위임한 것은 금후 정국운영에 큰 변수를 제공한 것이며 노대표가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요리할지에 따라 여권질서의 변화뿐아니라 개헌정국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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