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둘러싼 새 외교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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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번 「술츠」미 국무장관이 중공 방문 후 귀국길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신문들은 그 목적이 한국 정치의 「민주화 문제」에 초점이 있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그때 미국은 그의 방한 직 후 때맞추어 미국 외교관의 북한 접촉을 허용한다는 발표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것은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주된 관심이 현재 사실상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표시한 좋은 예인 것 같다.
그때를 계기로 미국은 중공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그리고 중공은 미국에 북한과의 접촉증대를 종용했다는 정보가 있다. 또 미국은 「아머코스트」국무성 차관을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오는 4월에 있을 「슐츠」의 소련 방문을 위해 소련 외무성 고위 관리와의 사전 논의를 3월18일 끝냈다고 한다.
「아머코스트」차관과 소련 외무성 고위 관리 협의에서도 쌍방은 한반도 분쟁과 관련하여 서로 영향력 행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반도가 미·중공, 그리고 미소관계에서 중요한 외교 논점으로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많이 보이고 있다.
금번 「슐츠」의 중공 방문은 그간 미국이 동북 아시아에서 증대되고 있는 소련의 군사력 봉쇄를 위해 결성하고 있는 미국·일본·중공 「3국 협력체제」강화로 근년에 「고르바초프」가 시도하고있는 외교적 도전에 대비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판단된다. 실제로「고르바초프」는 작년 7월의 블라디보스토크 선언 이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대한 적극적 외교 공세로 미국 중심의 3국 협력 체제를 약화시켜 소련의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
소련과 북한 간의 군사적 협력 강화현상도 이런 시각에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동북 아시아에는 소련 봉쇄를 목적한 3국 협력 체제를 더욱 강화·확대하려는 미국 외교와 이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소련 외교가 여러 차원에서 새롭게 대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만약 북한이 중공의 희망에 따라 소련과 밀착하지 않고 중공과의 협력을 보다 중시한다면, 북한은 한국처럼 미국 중심의 3국 협력 체제에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런 상태 전개를 틀림없이 바란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문제 논의에서 북한과 소련 밀착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미국과 일본이 빨리 북한과의 협상을 적극화하는 것이 동북아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중공측 제의에 상당한 호응을 보이게 되어 있다. 한편 소련은 미·일·중 3국체제의 약화로그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지 않는 한 북한 관계를 결코 소홀하게 취급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소련·북한의 지나친 군사적 밀착은 일본과 중공을 자극하여 오히려 반 소련적 3국 협력 체제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소련은 대북한 정책을 신중히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계를 갖고있다.
여하튼 상기한 점들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를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고있는 열강간의 외교 전에 다시 부각시키고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이 「고위급 정치·군사 회담」을 계속 제의하고, 한국정부가 「총리회담」제의로 긍정적으로 응답한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로 그 귀추를 기다리게 한다.
남북한 간의 대화는 그것이「고위급 정치·군사회담」「총리 회담」, 혹은 다른 어떤 형식을 취하든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될 필요가 있다. 국제정세의 추이로 보나, 국력면에서 보나 한국에 비해 불리하고 수세적 입장에 있는 북한의 저의와 계산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만큼 우리는 대북한 관계에서 자신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근본 입장에 충실하면 북한과의 대화가 어떤 형식으로, 또는 어떤 의제를 다루든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구애될 것이 없을 것 같다.
한국이 남북 대화에 적극임해야 할 중요 이유는 분명 그것이 현재 동북아 국제 정치에서 문제가 되고있는 북한·소련밀착을 예방하거나 둔화시킬 가능성에 있다. 북한·소련 관계가 군사적 밀착으로 발전하면 동북 아시아의 냉전은 계속 될 것이고, 그래서 사실상 남북한 관계 개선에서만 그 예방책이 찾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명목상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어도 한반도 문제는 현실적으로 결국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윤곽내에서 해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역시 두려워 할 것이 별로 없다. 「4강의 남북한교차승인ㄴ 이라는 기본윤꽉을 받아들이는 입강이면 한국은 사실상 미국 혹은 일본의 북한 접촉을 관대히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중공 진출 혹은 소련 관계 개선에 사실상 길잡이가 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 혹은 일본이 중공과 협력하여 대북한 외교 공세의 일환으로 북한과의 교류를 증대 혹은 적극화할 가능성이 보인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근간에 동북아시아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열강간의 외교 전쟁의 한 중요한 내용이 될 전망이다. 그 결과는 역시 북한과 소련의 태도와 대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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