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수군거리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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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벌써 2년째 휴면상태에 있는 남북대화의 재개를 위해 우리 주변의 열강들 사이에 뭔가 분주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슐츠」 미국무가 북경을 방문,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평양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도록 권고한 직후 중공의 당연락부장 주량이 북한을 방문한데 이어 미국의 「아머코스트」 국무차관은 16∼17일 모스크바를 방문, 역시 평양에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3강이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불명이다. 무엇인가 우리 얘기를 깊이 나누었을 것은 틀림없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은 한때 금지됐던 북한·미국 외교관의 접촉을 다시 허용키로 결정, 북한을 포함한 공산국가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소련의 반응은 아직 나타난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할수 있는 상황이 조성돼 있다.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소련의 세계정책은 평화와 국제협조를 바탕으로한 적극적 개방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은 아시아와의 협력을 강조한 「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선언과 최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의 동남아-대양주 방문외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국안보에 중대한 국가이익과 국제적 책임을 걸고 있는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없이 안보는 불가능하고 안보없이 민주화 또한 중대위협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인식은 우리 국민들의 그것과 대체로 일치된다. 미국 고위관리들의 국내정치 발언과 개입에 큰 거부감이 없었던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에는 남북한관계의 긴강완화가 관건이 돼있다. 이것을 위해 미국은 배경과 모스크바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남북한문제는 우리 민족의 내부문제이면서도 미·일·중·소등 4강과의 관련을 부인할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국제정치무대에 등장한 19세기 후반이래의 일관된 우리의 국제상황이었다.
지금 중·소는 동아시아에 안전과 안정이 보장되고 그 결과로 88년의 서울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져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은 한국의 민주화와 안보를 추구하는 미국의 입장에 중·소가 동조, 협력할 토대가 된다.
마침 서울과 평양도 서로 상대방에 대해 남북대화를 제의해 놓고 있다. 다만 절차문제에 차이가 있어 지금 조정해 나가는 단계다.
이런 점에서 주변 강대국들의 노력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 있다.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다. 여기서 「우리」란 남북한의 우리 민족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의 운명이 주변 열강의 이익에 따라 그들의 손에서 결정되던 세기전환기의 역사적 오욕이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우리 민족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이익을 위해,우리민족 자신에 의해,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과 평양이 우리 민족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단합된 청사진을 가지고 상호접근해 나가야 한다.
오늘의 대치국면에서는 어러움이 따른다. 미·중·소의 노력은이 어려움을 푸는 계기가 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 운명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잠시도잊어서는 안될 지상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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