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짙은 감동적 휴먼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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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25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가운데는 남편이 없는 사이 홀로 가정을 지켜나가는 끈질긴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것이 많다.
그 강인하고 숭고한 모성애는 바로 지난날 불행했던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이었다.
영화『에레니』를 보고있노라면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어머니」모습이 떠오른다. 비록 무대와 인물은 달라도 주제는 익히 알고 있는 소설속의 얘기처럼 낯익다. 그래서 전혀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실화다. 뉴욕 타임즈 기자있던 「니컬러스·게이지」가 83년 발표한 수기를 그대로 영상에 옮긴 것이다.
그리스 태생인 「게이지」는 끈질긴 추적과 증언을 통해 1940년대 그리스내전중 가족을 지키려다 공산당에 처형당한 어머니의 처절한 삶과 죽음을 생생히 기록했다.
영화는 바로 이「게이지」의 추적과정과 당시의 사건이 계속 교차되면서 펼쳐진다.
무대는 1940년대 왕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내전에 휩싸인 그리스의 산골마을. 평범한 가정주부-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관심조차 없는-「에레니」는 마을을 점령한 공산게릴라의 학정속에서 오직 자녀들을 지키는데만 전력한다. 언젠가는 미국으로 돈벌러 떠난 남편 곁으로 달려갈 미래를 꿈꾸며….
큰딸이 징집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에레니」는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딸의 발목을 지지는 등 몸부림치지만 위기는 계속 불어닥친다.
견디다 못한 「에레니」는 아이들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반동으로 몰려 총살당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외친 외마디는 『내 자식들아!』(My children)였다. 참으로 가슴뭉클해지는 장면이다.
「피터·예이츠」감독은 이 감동적 스토리를 잔재주부리지 않은 진지하고 차분한 연출로 이끌어 나갔다. 예술적 기법보다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에레니」역을 맡은 영국 연극배우출신「게이트·네리건」역시 과장없는 내면적 연기가 친근감을 준다.
결코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감동적인 반공 휴먼드라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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