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대학연설 구호 2|이덕영<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총학생회의 목적과 주체와 운명은 왜곡되어져 대사회투쟁 기구로만 위치지워졌고 모든 학생이 주인이 아니라 소수그룹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학생 스스로가 구성한 총학생회로부터 끊임없이 소외돼 왔다.』
『학생은 데모하는게 아니라 진실을 탐구하여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는데 진력하고, 먼저 깨달은 진실을 세상에 전파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연세대에 이은 고려대총학생회장선거 후보자의 전단내용. 「학생자치활동의 첫걸음은 학생권익 보장이다. 먼저 우리내부를 새롭게」라는 제목도 붙어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총학생회는 삼민의 선봉이어야 한다」며 「분단극복·민족통일·민주화 실현을 위한 휴식 없는 실천에 매진하자」고 「군부독재타도」「민중혁명쟁취」를 외치던 후보자들의 구호가 완전히 바뀌었고 분위기도 전혀 딴판이 됐습니다.』 고려대 학생처관계자는 돌변한 분위기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세대에서도 그랬고, 고려대에서도 후보자들의 전단내용은 학생복지가 전면에 부각된 공약이다.
「혁명」「해방」등의 용어는 자취를 감췄고 「남북학생회담추진」등의 공약을 내세우거나 「민중 민주사회건설」등으로 유세중, 또는 전단을 살포하다 경찰의 급습을 받는일도 없어졌다.
유세장엔 수장과목조정·학생복지·문화공간확대·도서관시설확충등의 목소리가 높다.『사회의 민주화 없이 학원의 민주화 없다』는 주장속에 숨가쁘게 돌아가던 종전의 유세장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84년 총학생회장직선제 이후 경찰과 교직원들의 주시속에 열려 해마다 어느 대학에서나 입후보자는 유세장을 나설때 경찰에 연행되거나 수배를 받고, 이에 맞선 학생들은 최루가스에 범벅이 되던 것이 지난 3년간의 유세장 풍속도였다.
올해 평온한 선거를 이끌어가고 있는 학생들의 자각뒤에 무슨 배경이 있는지 문교부나 학교당국도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다만 운동권 학생들의 전술전환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건국대사건 이후의 운동권학생 대량구속 때문일 것이란 추측도 하는 것 같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이같은 변화가 정치색 짙은 주장과 공허하게 들리던 각종 공약이 「학생대중」을 학생회로부터 방관과 무관심으로 치닫게했다는 사실의 재인식과 반성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변화가 최소한 학생회를 놓고 볼 때 바람직한 것이라는 학내외여론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 살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